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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강아지 "잘 있었어, 우리 똥강아지들?" 하며 퇴근하고 집 현관을 여는 매일 저녁. 그 문 앞에는 꼬리를 곧게 세운 채로 다가오며 기지개를 쭈욱 켜는 두 고양이가 있다. 나는 내 고양이들을 ‘똥강아지’라 부른다. '아구 이쁘다 우리 똥강아지'라며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애칭에 나도 놀랐었다. 퍼뜩 이 기원을 거슬러가 보니 '똥강아지'는 내가 듣던 애칭이었다. 어릴 적 우리 아빠도 우리 셋을 '똥강아지'라 불렀다. 나는 에잇 똥강아지가 뭐야! 하며 자주 삐졌었고 그걸 또 아빠는 놀렸었다. 원래 고양이의 아기를 부르는 말은 '아깽이'다. 우리 안나와 카레는 4살이라 아깽이는 아니니까, 또 그렇다고 강아지는 더더욱이 아니니까.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줘야지 싶었다. 괜히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더 귀여운데? 하는 .. 2023. 11. 19.
겨울의 이상과 의지 기상 알림을 가볍게 무시하고, 잠깐 눈을 붙이고 뜨면 9시에 근접해있다. 지난 계절보다 특별히 더 힘든 일상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몸이 자꾸만 늘어지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침 수영도 안간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서 뭔가를 한다는 게 힘들어진 계절이다. 핑계는 많고 게다가 핑계가 잘 먹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늘어지고 싶지만 게을러지고 싶지 않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우울감이 있다. 그 우울감은 이상과 의지의 차이가 클 수록 커졌었다. 이젠 내 패턴을 내가 안다. 이상을 낮추고, 몸을 조금씩 더 움직이며 나아져야지. 2023. 11. 17.
랜딩 1. 열흘간 다녀온 반짝이던 여름 나라에서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 여름은 가득 차고, 요란하고, 일렁인다.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렸다. 일렁이는 가슴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To do 리스트를 쳐내려 가는 직사각형의 일상이 못내 미웠었다.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으로 3일을 겨우 버티고 또다시 3일간 연휴를 맞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창문을 다 여니, 차가운 온도와 후두둑 가을 빗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가을이란 계절을 받아들인다.2. 처음 걸려본 장염이 다 나은 오늘, 가장 좋아하는 비건 음식점에서 랩을 포장해 와서 먹었다. 건강 때문에 끊었던 커피도 반년만에 직접 내려서 마셨다. 구석에 넣어두었던 포트, 전자저울, 그라인더를 꼼.. 2023. 10. 9.
할머니에서부터 나에게까지,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할머니도 나도 모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할머니의 백발과 나의 흑발이 동시에 살랑인다. (…) 나는 무대에 서서 수십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 중 살아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p.29 우리는 더 이상 천둥번개에 울지 않는다. 우리를 울리는 건 다른 문제들이다. p. 90 찬바람이 불면 왠지 속이 깊어져야할 것만 같은데, 더 잠잖아지고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만 같은데, 아마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p.101 자신의 안팎을 오로지 혼자서 가꿔온 사람도 있을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이제는 내 삶이 타인들의 시선에 대롱대롱 매달린다는 것을 어떤 유감도 없이 이해한다. p.137 우정은 서로에게 좋은 대명제를 주는 일. 돌아가면.. 2023. 10. 9.
꼼꼼하고 촘촘한 8월 수액까지 맞아가며 보낸 8월이었다. 어느새 8월의 마지막 주의 시작이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에 맞춰 같이 칼춤을 춘 한 달이었다. 지지 않겠노라며. 이 외에도 참 많은 만남과 즐거운 일들이 있었다. 꽉 채워 놓다보니, 아 이제 놀 거 다 놀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마 이 지친 마음조차 겨울내내 그리워할 추억이겠지. 이내 다시 뜨거운 태양에 땀을 흘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너무 더웠고 체력이 고갈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거운 습기로 잔머리가 곱슬해지고 흐르는 땀에 화장이 다 지워지고 밤에도 이어지는 더위에 잠 못이뤄는 여름이 좋다. 8월 6일 펜타포트락페스티벌 정말 너무 뜨거워서 죽을 뻔했던 인천 락페. 친구들과 연인과 같이 갔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8월 19일 흠뻑쇼 대구 삼남매가 다녀온.. 2023. 8. 28.
뜨거운 여름밤, 라빠르망 96년도 프랑스 영화, 을 별빛영화제에서 틀어준다하여 예매했다. 목적은 별빛영화제였고, 어떤 영화인지 예매하면서는 전혀 몰랐다. 직접 관람하기 전까지도 모니카 벨루치의 아름다운 시절의 로맨스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동생과 서로 입을 떡 벌린채로 눈이 마주치며 '엉망이다'라는 무성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몰입감있게 엉망친장일 수가 있나. 아마 이토록 강렬한 몰입은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하던 자신만의 몰입에 이입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라빠르망의 캐릭터들이 하는 사랑은 휘몰아친다. 막스는 리사에게 첫 눈에 반해 3일을 스토킹하고, 2년만에 만난 그녀 몰래 호텔과 집에 침입해 그녀의 흔적을 찾아헤맨다. 털 한오라기라도 찾기 위해. 이런 상황을 범죄 프레임으로 보기 시작하면 영화가 재미없다.. 2023.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