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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되고 섞이는 아침에 깨서 곧바로 글을 쓴다. 올겨울의 마지막 꽃샘추위가 찾아왔던 지난밤, 난 또 잠에 들지 못할까 무서웠었다. 새벽에 한 번 카레가 깨웠지만 다행히 거의 깨지 않고 푹 잤다. 그 전날에 거의 자지 못해 쌓인 잠이었다. 눈보다 먼저 의식이 퍼뜩 떠졌다. 생각이 몰려왔다. 깨서 생각이 몰려온 건지, 생각이 잠을 깨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께 저녁 정성스러웠던 네 거짓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장정 세 달 동안 눈물을 뚝뚝 쏟으며 되뇌었던 대단했던 다짐들이 연이어 생각났다. 가장 최근 눈물의 다짐은 3주 전이었었지. 하 씨, 오늘 새벽도 이렇게 잠을 못 자려나 싶어서 심호흡하며 명상을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멈추지 않는 기억에 집어삼켜질 즈음에 이럴 바에 그냥 일어나지, 싶어 눈을 떴고 핸드.. 2024. 3. 4.
에세이, 그림책 큐레이션이 좋았던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블루도어북스'에 다녀왔다. 마침 일요일 낮 시간에 1인 예약이 생겨서 빠르게 예매하고 찾아갔다. 들어갈 때부터 묘하게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잘 차려진 곳, 예약을 해야만 갈 수있는 곳, 유료 입장만 되는 곳에 누추한 내가 가도 될까. 가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아깝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것은 조용한 환대였다. 나긋나긋한 직원분이 차분하게 천천히, 이용방법을 알려주었고 충분히 숙지하도록 기다려주었다. 우산과 외투를 맡겨두고 따뜻한 커피를 부탁했다. 온도는 어두웠지만 책이 있는 곳에서 책을 알아보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책을 읽는 곳에는 조명들이 부족하지 않게 놓여져있었다. 정말 다양한 조명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발뮤다 랜턴 조명이 참 많았던 것도 인상.. 2024. 1. 28.
나를 통과한 사랑. 한 때 나를 살게 한 사람. 뭐가 그리도 비장했을까. 나를 피나게 하는 선인장이어도 나는 당신을 또 안을래,라는 일기를 썼던 때였다. 사랑을 하는데 실제로 온몸이 아팠었다. 그때여서 할 수 있던 마음이었다. 내 가족이 무너지며 태풍에 내가 다 휩쓸려서 폐허가 되었던 때. 불쑥 나타나, ‘너와 살고 싶어’라던 당신의 다정한 말은 나에게 단 하나 믿을 사람, 믿고 싶은 낙원이었다. 나를 다 내맡기고 싶었다. 너는 든든했고, 참 다정했으며, 심지어 폐허 된 나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탐이 났다. 한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같이 사는 삶을 먼저 꿈을 꿔주고, 우리 거기서 같이 행복하자며 내민 손을 겁도 없이 덥석 잡았다. 다만 거긴 ‘너’만 있던 낙원이었다. 나는 초대받았지만 그 낙원에 가기 위해선 내 일부를 도려내야만 했다. 사랑은.. 2024. 1. 22.
2023년 회고 올해 소비한 콘텐츠 올해는 문학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네. 아무래도 문학은 소화하는 데에 시간을 좀 더 써야한다. 그래도 내년엔 으쌰하면서 더 누려야지. 그리고 영화는 진짜 혼자서 이것저것 많이 봤다. 베스트로 꼽은 4편도 모두 혼자 본 것들이다. 읽은 책: 24권 본 영화: 34편 시리즈/팟캐스트: 13편 다녀온 콘서트/페스티벌/전시회: 19개 다녀온 여행: 6월 양양, 9월 발리, 10월 속초, 11월 파주 캠핑, 12월 제주 올해 가장 좋았던 책 신형철 아들에게 쓴 혈서같은 편지를 보고 신형철의 팬이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결의, 다짐, 책임, 의지가 느껴진다. 확실히 무거운 사람일 수록 단단해보인다. 그 단단함을 기반으로 나풀거릴 수있는 유연함을 갖고 싶다. 욘 포세 2시간 반만에 단숨에 읽.. 2023. 12. 31.
따따숩한 크리스마스 12. 23. 토 내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내 돈과 노고가 포함된 너무나도 뿌듯한 '운전면허 합격'!! 도로주행을 한 번 떨어지고 재수를 했다. 두 번째는 스무스하게 붙었다. 기능시험부터 도로주행까지 쭉 한 강사님이셨는데, 그 때 도로주행 붙으면 먹으라고 주신 생크림빵이 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며 집에 잔뜩 쟁여두고 점심 후에 간식으로 드신다고. 합격하고 먹으라했는데 그 날은 먹지 못했다... 그리고 2주 뒤, 재검을 앞두며 이 빵을 챙겨갔다. 오늘은 꼭 먹으리라 다짐했지. 그리고 합격 후에 돌아와서 학원에서 먹는 이 생크림빵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강사님 생각이 나서 데스크에 성함을 여쭤보고, 그 강사님께 저 붙었다고 꼭 전해달라고 당부드렸다. "제가 그 때 합격하고 먹으라고 주신 빵, .. 2023. 12. 29.
죽어가는 살아지는 삶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 p. 16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 p. 133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 2023.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