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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여름밤, 라빠르망

by Summer_bom 2023. 7. 30.

96년도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을 별빛영화제에서 틀어준다하여 예매했다. 목적은 별빛영화제였고, 어떤 영화인지 예매하면서는 전혀 몰랐다. 직접 관람하기 전까지도 모니카 벨루치의 아름다운 시절의 로맨스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동생과 서로 입을 떡 벌린채로 눈이 마주치며 '엉망이다'라는 무성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몰입감있게 엉망친장일 수가 있나. 아마 이토록 강렬한 몰입은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하던 자신만의 몰입에 이입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라빠르망의 캐릭터들이 하는 사랑은 휘몰아친다. 막스는 리사에게 첫 눈에 반해 3일을 스토킹하고, 2년만에 만난 그녀 몰래 호텔과 집에 침입해 그녀의 흔적을 찾아헤맨다. 털 한오라기라도 찾기 위해. 이런 상황을 범죄 프레임으로 보기 시작하면 영화가 재미없다. 그저 감독이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황, 메타포일 뿐.
막스에게 반한 알리사는 막스의 하나뿐인 친구 루시앙에게 접근해 이용하고, 막스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자신이 리사와 동명이인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결국 모든 것이 밝혀졌지만 그저 오래전부터 너를 열망했던 것이라 호소하는 일기장을 건낸다.
이들이 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라기보단 열망, 열병, 지독한 폭염같은 것에 가깝다.

라빠르망 L’Appartement은 영어로 아파트먼트이다. 아파트인거지. 그래서 영화에서는 건축 구조를 활용한 장면과 메타포가 자주 등장한다. 캐릭터들의 머무는 집이라는 공간이 메타포 그 자체다.
리사의 2개의 집은 항상 맨 꼭대기이고 테라스와 큰 창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매혹적인 리사, 개방된 문으로 누군나 들어올 수 있는 리사의 집. 하지만 리사는 정작 그 집을 자주 비운다. 외부인을 늘 허락하지만 자신은 거기서 빠진다.
알리사의 집은 과거 시점에만 등장한다. 현재의 집은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도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그녀의 대부분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등장한 엘리사의 진짜 집도 내부가 공개되기 보다 그 집에서 리사를 훔쳐보는 창문으로만 보여진다.
루시앙의 집은 큰 벽없이 넓은 침대, 넓은 소파가 놓여져있다. 그는 비밀이란 것이 없고, 비밀로 점철된 알리사와 열망으로 휩싸인 막스를 받아들이는 용도로 집이 사용된다.
유일하게 지금 자신의 집이 나오지 않는 막스는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사건이 진행된다. 약혼녀에게 돌아간 막스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과거의 막스의 집은 리사와 이별 후 그녀 물건들을 불태워버리는 데 한 번 등장한다. 아마 이 부분이 마지막 리사의 결말의 복선이었을 것.

 

 
로맨스영화인 줄 알고 봤지만, 장면마다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였다. 그들의 미모, 그들의 불태워버리는 열망을 열심히 따라가다보면 또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어떤 시기에, 한 차례 지나가는 열병일 뿐이었다. 결국 열병의 근원, 모두를 우러러보게 했던 리사는 그 화염에 휩쌓인다.
막스는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간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짓는 알리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 지긋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건 너 때문이야, 너가 내 열망의 방향을 뒤틀었어, 라는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막스는 자기 열망이 뭔지 모르는 어리석음 그 자체다. 그저 지나가는 마음을 지나가게 둘 줄을 모르고, 각 상황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역할을 지나치게 소화할 뿐인 연극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