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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서늘한 받아들여짐

by Summer_bom 2023. 12. 10.

내일 볼 영화 <괴물>을 앞두고 이동진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그의 또 다른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았다.
예전에 봤는 줄 알았는데 전혀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아마 ‘고로에다 히로카즈’를 소비하기 위해 보았던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만 보면 가족들이 복닥복닥 모여있는 모습이 정겹고 다정한 영화일 거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고로에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주 날카로운 칼로 깊은 곳을 푹 찌르되, 피 한 방울 나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다. 
서늘했다. 우리는 가장 가깝다고 하지만 가장 많은 것을 숨기고, 하지만 가장 많이 들켜서 서로 상처를 주고, 모든 걸 알고 있는 듯이 굴지만 그의 이면을 마주치면 감당하기 힘들어하고, 너무 당연한 듯 ‘나중에’라고 말하지만 항상 한 발짝 늦는다.
'우리'는 가족이다. ‘사랑스럽다’라는 말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보다는 ‘지긋지긋함’에 가깝다. 지겨워서 더 알고 싶지 않지만 그의 지독한 속내를 알게 되고야 만다. 하지만 더 이상 상처랄 것도 없다. 내가 용서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만 해서 받아들인다.
가족이란 뭘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에서 김민희가 한 대사가 생각났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 좀 조용히 하세요. 그냥 입 좀 조용히 해요! 다 자격이 없어요. 다 비겁하고. 다 가짜에 만족하며 살고, 다 추한짓 하면서 그게 좋다고 그러고 살고 있어요. 다 사랑받을 자격 없어요!

울분을 토하면서 하는 그녀도 사실은 위선 속의 말들 위에서 춤을 추며 즐길 따름이다.
 

서로 속내를 알면서 눈 감아주고, 숨겨주고, 사실은 미워하지만 들키지 않기도 하고,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는 것. 그렇다고 가족을 위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미워하지만 나를 품어주는 것, 지긋지긋해!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며 해주는 포옹.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은 늘 따스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날 사랑은 몸서리치게 차가워 베일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습 없이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없다. 가족을 가족이라 할 수없다.
200년 전 톨스토이가 물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받아들여짐으로 산다고, 겨우 살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