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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빼앗고 싶은 빛나는 젊은 아빠, <애프터썬>

by Summer_bom 2023. 7. 22.

오랜만에 약속없는 고요한 금요일 밤. 마지막 맥주 한 캔 마시며 오랫동안 품고있던 <애프터썬>을 틀었다. 여름의 한 중간, 반짝이는 여름날의 캠코더의 모든 장면은 매번 여름이 오면 내 향수인마냥 떠오를 것 같다.

풍덩, 수영장과 바다로 뛰어들었을 때 시원하기보다 아득한 노란 빛의 온도만큼 높게 느껴졌다.

에무시네마 별빛영화제에서 꼭 다시 보고싶다. 모기와 씨름하는 여름밤도 후덥지근 하던 튀르키에의 풍경 앞에서 다 반짝거리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만 같다.

저번주에 본 엘리멘탈에서 쭉 이어지는 감정이 있었다. 부성애. 내 생애에서 부성이란 없는 것이었어서 ‘부성애’라는 단어는 어디선가 읽기만 했지,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 처음 알게 되었다.

 

소피가 아빠에게 힘껏 안겨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대미다. 약간의 술기운때문이었는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아빠 품에 안긴 적이 있었던가? 아빠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낀 적은? 아빠가 나에게 어젯밤 그렇게 잠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던 적은?

내게는 젊은 아빠가 없다. 자신의 반짝이는 순간을 딸과 함께 나누던 어린 아빠의 모습이 없다. 엘리멘탈과 애프터썬을 보며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나에게는 없던 것이 누군가에겐 인생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추억이라는 것을 목격해버려서였다. 없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이제 솔직히 얘기한다. 그저 부럽기만 했다.

 

그 점이 미움으로 남아있는데, <애프터썬>은 그 이면을 몇 장면으로 담아낸다.

소피와 다투고 밤에 혼자 밤거리를 헤매다 밤에 뛰어드는 아빠, 헐벗은 채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뒷 모습, 시덥잖은 농담을 하지만 실제로는 실수로 가위에 찔러 피를 흘리는 아빠.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지만 아빠도, 우리 아빠도 그랬을까. 내가 모르는 우리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다만 그의 사랑이 내게 정확히 닿지 않았을 뿐, 그도 그 나름의 이겨냄을 보냈겠지.

내 나이 31. 아빠가 나를 낳은 나이다. 한번도 생각한 적없었다. 늘 이 나이쯤 엄마는 둘째 낳았었지, 라는 생각만 했었다. 어쩌면 우리는 부녀간의 거리, 남녀와의 거리를 합친 것보다도 멀어서 도저히 난 아빠의 삶에는 공감을 하지 못한 채 자라온 것 같다. 미워하느라 아빠도 삶이 있었다는 걸 상상해보지도 못했다. After Sun, 영화가 보여주려고 했던 그 목적 그대로, 그의 뒷모습을 상상을 처음해본다.

머리로 생각한다. 아빠는 아빠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 매번 졸린 눈으로도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정성과 좋은 곳이 있으면 기꺼이 데려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받고 싶은 사랑, 내가 확신하는 사랑은 아니다.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지만 아빠의 빛나던 젊은 시절을 기꺼이 빼앗고 싶었다.

 

요즘 읽고 있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과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정지우)를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 p27
사랑은 시간이고 집중이다. ‘정확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시작되고 지속된다. 사랑은 내 앞에 도래한 세계에 대한 목격이자, 그에 호응하여 변해 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정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