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담32

위로하는 밤 취했던 날이었다. 새콤한 화이트 와인과 Dst.club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소금의 현대예술 같은 음악과 목소리와 행복해를 연신 외치는 사랑스러운 친구. 책 얘기도 했다가, 아픔도 얘기했다가, 다시 웃었다가, 시시콜콜한 남자얘기도 했다가. 3주 만에 술을 마시는데, 참 들뜨기에 적당한 토요일 저녁이었다. 처음 만나 짧게 말을 나눈 사람들도, 기분도 모두 좋았고, 오랜만에 들뜨는 이 상황 자체에 취했다. 요즘은 내가 가진 우울함이 다른 사람에게 퍼질까봐 되도록 혼자서 고양이들과 시간만 보내고 있는 편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무사처럼 주눅 들고 무력해졌고, 바보를 만들어주는 약 기운 덕에 의지를 갖고 무언가 새롭게 할 의욕도 없기도 하고. 번뇌에 휩싸이기보다 바보가 되는 걸 하고 싶었으니 일종의 휴식기라고 생.. 2024. 3. 24.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에너지 2주만에 다시 정신의학과를 찾아서 약을 증량했다. 처음 약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나니, 다시 심장이 두근두근거려 집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얘기했더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비슷한 증상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끊이질 않고 그 날의 기억이 되풀이되고 그것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며, 집중하기가 힘든, 무기력하고 우울감이 동반되는. 몸이 아프지도 않고 지나치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주말에는 푹 쉬었고 일요일에는 집에만 은거하며 먹고 자며 누워지냈다. 마음이 많이 지쳐 어떤 것에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그냥 좋고 재밌는 것 보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제야 알겠다. 많은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해 한 치 걱정없이 일을 수행한다는 게 참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거구나. 연차를 쓰기.. 2024. 3. 20.
잊는 약 저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상담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생각이 끊이질 않고 불안한 감정을 멈출 수가 없어요. 처음 찾은 정신의학과의 진료실에서 내 증상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차분한 회색 니트를 입은 50대 중반의 남자 의사는 간간히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내 증상을 진료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이별 얘기를 할 때는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몇 가지 간단한 시험지를 작성하고, 어느정도 기질적으로도 강박 장애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약을 요청했다. 이별에서 온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고, 그날의 기억으로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멈추고 싶었다. 헤어지고 쓴 첫 글에서 선언했거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너의 자리를 메우리라고. 6개월을 꾸준.. 2024. 3. 11.
분열되고 섞이는 아침에 깨서 곧바로 글을 쓴다. 올겨울의 마지막 꽃샘추위가 찾아왔던 지난밤, 난 또 잠에 들지 못할까 무서웠었다. 새벽에 한 번 카레가 깨웠지만 다행히 거의 깨지 않고 푹 잤다. 그 전날에 거의 자지 못해 쌓인 잠이었다. 눈보다 먼저 의식이 퍼뜩 떠졌다. 생각이 몰려왔다. 깨서 생각이 몰려온 건지, 생각이 잠을 깨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께 저녁 정성스러웠던 네 거짓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장정 세 달 동안 눈물을 뚝뚝 쏟으며 되뇌었던 대단했던 다짐들이 연이어 생각났다. 가장 최근 눈물의 다짐은 3주 전이었었지. 하 씨, 오늘 새벽도 이렇게 잠을 못 자려나 싶어서 심호흡하며 명상을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멈추지 않는 기억에 집어삼켜질 즈음에 이럴 바에 그냥 일어나지, 싶어 눈을 떴고 핸드.. 2024. 3. 4.
나를 통과한 사랑. 한 때 나를 살게 한 사람. 뭐가 그리도 비장했을까. 나를 피나게 하는 선인장이어도 나는 당신을 또 안을래,라는 일기를 썼던 때였다. 사랑을 하는데 실제로 온몸이 아팠었다. 그때여서 할 수 있던 마음이었다. 내 가족이 무너지며 태풍에 내가 다 휩쓸려서 폐허가 되었던 때. 불쑥 나타나, ‘너와 살고 싶어’라던 당신의 다정한 말은 나에게 단 하나 믿을 사람, 믿고 싶은 낙원이었다. 나를 다 내맡기고 싶었다. 너는 든든했고, 참 다정했으며, 심지어 폐허 된 나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탐이 났다. 한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같이 사는 삶을 먼저 꿈을 꿔주고, 우리 거기서 같이 행복하자며 내민 손을 겁도 없이 덥석 잡았다. 다만 거긴 ‘너’만 있던 낙원이었다. 나는 초대받았지만 그 낙원에 가기 위해선 내 일부를 도려내야만 했다. 사랑은.. 2024. 1. 22.
2023년 회고 올해 소비한 콘텐츠 올해는 문학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네. 아무래도 문학은 소화하는 데에 시간을 좀 더 써야한다. 그래도 내년엔 으쌰하면서 더 누려야지. 그리고 영화는 진짜 혼자서 이것저것 많이 봤다. 베스트로 꼽은 4편도 모두 혼자 본 것들이다. 읽은 책: 24권 본 영화: 34편 시리즈/팟캐스트: 13편 다녀온 콘서트/페스티벌/전시회: 19개 다녀온 여행: 6월 양양, 9월 발리, 10월 속초, 11월 파주 캠핑, 12월 제주 올해 가장 좋았던 책 신형철 아들에게 쓴 혈서같은 편지를 보고 신형철의 팬이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결의, 다짐, 책임, 의지가 느껴진다. 확실히 무거운 사람일 수록 단단해보인다. 그 단단함을 기반으로 나풀거릴 수있는 유연함을 갖고 싶다. 욘 포세 2시간 반만에 단숨에 읽.. 2023.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