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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똥강아지

by Summer_bom 2023. 11. 19.

내 똥강아지들

"잘 있었어, 우리 똥강아지들?" 하며 퇴근하고 집 현관을 여는 매일 저녁. 그 문 앞에는 꼬리를 곧게 세운 채로 다가오며 기지개를 쭈욱 켜는 두 고양이가 있다. 나는 내 고양이들을 ‘똥강아지’라 부른다.

'아구 이쁘다 우리 똥강아지'라며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애칭에 나도 놀랐었다. 퍼뜩 이 기원을 거슬러가 보니 '똥강아지'는 내가 듣던 애칭이었다. 어릴 적 우리 아빠도 우리 셋을 '똥강아지'라 불렀다. 나는 에잇 똥강아지가 뭐야! 하며 자주 삐졌었고 그걸 또 아빠는 놀렸었다.

원래 고양이의 아기를 부르는 말은 '아깽이'다. 우리 안나와 카레는 4살이라 아깽이는 아니니까, 또 그렇다고 강아지는 더더욱이 아니니까.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줘야지 싶었다. 괜히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더 귀여운데? 하는 집사로써의 주장도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똥고양이'라 대신 불렀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봐도 '똥고양이'는 입에 잘 붙지 않더랬다. 더군다나 똥고양이는 구글에 검색해 봐도 고양이 똥에 대해서만 나온다. 애초에 어감도 예쁘지 않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나만 별로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이젠 다시 똥강아지야, 하고 부른다. 고양이들은 내가 집에 일찍 들어와서 만져주면 그저 행복하다. 우리 사이엔 정확한 언어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너를 부르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무언가가 '똥강아지'일 뿐. 그건 내 사랑을 잔뜩 품고 외치는 애칭일 뿐이다.

듣고 자란 것이 내가 부르는 애칭이 되었다. 아빠에게서는 따스한 감정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고양이를 대하는 마음과는 똑같진 않겠지만 아빠에게도 이런 예뻐하는 마음,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생각하니 마음의 방 한 켠에 촛불이 켜지는 기분이 든다. 내게 있어 아빠라는 방은 온도가 없고 조도가 어두운 컴컴한 방이다. 따스하게 불을 켜주지 않는 그 어른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그 방에 어떤 것이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똥강아지'의 어원을 깨닫곤 처음 궁금해졌다. 아빠는 나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가 주는 사랑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해서 없던 것이 아닌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며. 하지만 '똥강아지'는, 사랑스러워하는 마음 없이 나올 수가 없다. 나와 아빠의 마음에 엇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아빠가 나를 그렇게 불렀어서, 이제 나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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