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 ‘가정의 천사’를 죽이는 방법에 대하여.

by Summer_bom 2016. 9. 13.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다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십시오.
 

 

기대치는 많이 없었다. 사전 정보없이 버지니아 울프를 처음 만나는 책이라 살짝 기대하는 정도? ‘여성’으로서 ‘남성’을 비판하는 글은 아닐까 약간은 꺼려하며 읽기 시작했다.

난 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함에 감탄했다. 그녀가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을 풀어서 에세이로 펴낸 것이 <자기만의 방>이다. 그녀는 여성이 자기만의 방이 왜 필요한지,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한다. 분명한 주장이 있는 글인데, 주장은 차분하고 천천히 드러난다. 아니, 드러나기 전에 자연히 나에게 흡수되었다. 직접적인 터치없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치명적인 섬세함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간혹 주어도 목적어를 마구잡이로 설파하며 주장만을 말하기 십상이라 이러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래서 더 감탄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처음 내가 갖고 있던 편견이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비판하지 않았다. 남성을 탓하지도 않았고 제도와 사회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이제 막, 자유의 몸을 입은 여성들에게 온전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유롭고자 하는 여성을 가두려는 사람에게 분노하여 뒤돌아보는 순간,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 얼마나 옹졸했던가. 정말 남녀싸움만큼 유치한 것이 없다.

 

모든 여자들에게, 아니 오히려 남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페미니스트가 되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한 여성이 역사 내내 억울함과 분노를 최대한 절제한 채, 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여성의 역사를 바라보는 에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오의 감정과 비판의 자제는 20세기의 여성으로서, 지금의 여성으로서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더 절절해 보인다 해야할까.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스트는 부정적 이미지였다. 이유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여자 연예인에 대해 악플이 많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에 대해 잘 몰라서 ‘아, 이 사람 나대기 좋아하더니 욕먹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지가 불러온 참사… 많이 부끄럽다. 그때 검색해보았다면 좀 더 빨리 생각할 기회가 많았으리라.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에게 던지는 적대심 가득한 눈빛을 난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다행히 이전에 버지니아 울프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여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하여 남긴 흔적이 있어서 나의 고민의 방향은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무작정 생각하는 것은 쉽게 사라지고 위험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나는 책을 좋아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난 현재 21세기의 여자로 살고 있지만, 울프가 했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아직도 여성에게는 죽여야할 유령이 많고, 깨뜨려야 할 편견이 많습니다.”

19세기부터 극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니, 극복이랄 것이 없다. 애초에 자유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래서 자유가 된 이 몸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보통 혐오자들은 여자가 싫다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다른 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증오심이 기반인 듯하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대단하다.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니.

 

여성혐오가 이젠 이슈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는지 기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혐오’란 무서운 감정인데, 어쩌다가 ‘여성’뒤에 붙어버렸을까. 처음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서 김치녀라는 말이 나와서 비하발언을 하기 시작할 때, 난 매우 분노했다. 댓글에 일일이 비공감을 누르고 반박 댓글을 달고.. 남자보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작은 내가 미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정확히 짚었다. 상대에게 분노하고 욕을 할 수록, 그에 맞서서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미리 알고, 방법을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실천을 내가 할 수 있느냐,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이 환경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병철이 말한 부정의 힘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고 요즘 느낀다.

여성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은 나의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이다. ‘여자가 대통령도 하는데 무슨’이라는 말에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를 ‘여성으로서’ 구속하고 재단하려는 ‘가정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했듯이.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날 재단하는 ‘내가 여자라서 그렇다’는 나의 무의식이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날까.

 

 

 


 

수 많은 질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지요. 그러나 필요한 것은 답이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p.43) 

내가 잠시 분노라고 이름붙여 부르는 것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일까? (p.52)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할 때면, 거울 속 남성의 형상은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p.56)

여성은 시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만, 역사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요. (p.66)

익명성은 여성의 피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p..75) 

소설가에게 완전성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것을 사실임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설득력입니다. (p.103)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만이 남성이 쓰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여성이 쓰는 방식대로 썼습니다. (…) 저 영원한 현학자들의 끊임없는 훈계를 무시했지요. (p.106)

원한다면 도서관 문을 잠그시죠. 하지만 당신이 내 자유로운 마음에 문이나 자물쇠, 빗장 같은 걸 닫아걸 수는 없을 겁니다. (p.108) 

공책에 연필로 쓰지말고, 빠른 필체로 최대한 빠르게,  (…) 자신에게 빛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눈 앞에 노인 이상한 음식을 바라보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록해야만 하니까요. (p.120)

그 창조력은 수 세기에 걸쳐 매우 혹독하게 훈육으로 얻은 것이며, 그것을 대신 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성이 남성처럼 글을 쓰거나 남성처럼 산다면, 혹은 남성처럼 보인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p.123)

이 모든 수 많은 흐릿한 삶들은 기록으로 남겨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p.125) 

나는 (…) 남성이 지닌 허영심(특색)을 증오의 감정없이 비웃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 (p.127)

만약 욕을 퍼붓기위해 멈춰선다면, 당신은 지게 되는 거예요. (p.131) 

순전한 남성 혹은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라고요. (p.145) 

사람들의 평가법칙에 굴복하는 것 역시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p.148)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여러분만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여러분에게 실재를 마주한 채 활기있는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p.153)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다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십시오. (p.154)

여성은 여전히 싸워야 할 유령이 많고, 극복해야 할 편견이 많습니다.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