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디톨로지> 김정운 : 창조의 재해석. 그리고 정말 현실적인 그의 생각.

by Summer_bom 2016. 9. 13.

<남자의 물건>을 통해서 김정운 교수를 처음 접했었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킥킥대면서 읽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유머가 가득한 말투에 끌려 힐링캠프까지 찾아보다가 이 방송을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떠난다고 했다. 학문자, 연구자로서 집중하기 위해. 그리고 3년만에 돌아온 그가 내놓은 책. 그러나 평점이 그닥 좋지 않아서.. 별 기대안하고 읽었다.

그러나 역시나! 읽으면서 ‘우와’라고 무릎을 친 것이 몇 번이나 된다. 김정운 특유의 유머때문에 오히려 통찰력이 묻히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평점이 낮진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는 지식권력이 이제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지식인’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 어려운 말, 어려운 학자의 이론을 들고나오면 우와..한다. 그리고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김정운은 과감히 그런 모습을 내쳤다. 난 그런 모습이 좋으면서도 아쉽다. 가볍게 쓰기 위해 밀도를 조금 빼낸 느낌이다.

 

먼저 내가 이 책을 이제 읽었다는 것에 반성.. 김정운 교수만큼의 지식을 가지진 못하겠지만(지향점이 다르기에), 그의 관찰력과 통찰력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현재, 현실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자꾸 ‘물론 나의 생각일 뿐이다’, 라고 말하지만 나는 팩트라고 생각되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으니 한 발빼는 모습이지만, 난 오히려 더 강하게 밀어붙여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 소심하다는 그의 성격이 글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ㅋㅋ

IT업계에 관심이 많고, UX Design을 전공하고(싶은) 있는 나에게 좋은 생각의 방향을 제시해준 책이다. 트렌드라는 것을 알고,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놓쳐서 안되는 것은 예의주시하는 예리한 관찰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예민한 오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는 이번.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부제가 새로워보이지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현재 그렇기 때문에. 다만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패션을 돌고 도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 나는 나팔바지와 골덴바지가 다시 올지 몰랐다… 정말.. 좀 더 예쁘게 재편집되어서 새로운 유행이랍시고 나보고 입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깜놀..

소장가치가 나에게 별로 높지 않은 이유는 위에 언급한 ‘밀도’때문이다. 새로운 시선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만족이 되었다고 할까.. 인상적이어서 메모해놓은 그의 생각들을 바탕으로 나는 더 깊은 이론들을 접하고 싶어졌다. 좀 더 어렵게 써도되니까, 지식인인척 자만해도되니까 그의 생각을 강렬한 어투로 접하고 싶다. 아마 그것이 그의 목표이기도 할 것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모론이 딱 내 스타일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라고 끝맺음 하는 그의 음모론(?)들은 전부 그럴듯하다. 다만 확실하게 주장하기에는 아직 정확한 논리나 근거가 없기에 얼버무리는 것이다.그의 가설은 대부분 맞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정말 도덕적인 삶은 사는 빌 게이츠의 연설보다 더 멋지게 들리는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편집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 단순히 말해서 재미없다는 것. 누가봐도 완벽하고 바른 삶을 사는 그의 삶에서 스펙타클한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영화같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끊임없이 아는 것들로,“이건 이래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라며 카드를 맞춰보는 작업이 그가 말하는 에디톨로지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을 좋아한다. 음모론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내가 얄팍하게나마 아는 것들로 대입해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면 무언가 ‘창조’되겠지.

 

 

 


 

논리적 사유는 언제나 2차적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진 다음에 난다’.
지식권력이 이제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p.47) 

그 쓸모없는 새끼 손가락으로 하루에도 수백번씩 시프트키를 눌러야 하는 이 한글 자판의 배열은 도대체 제정신인가. (p.60)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p.65)

그런데 가만보면 이상하다. 그럼 헤겔은 누구 전공인가? 마르크스나 하버마스는 대체 누구를 전공했단 말인가? (p.73)

다들 책, 즉 텍스트를 받들고만 있을 때, 자신은 이 텍스트를 해체하는 일부터했다는 것이다. 

남의 이론을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편집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 편집가능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라고 한다. (p.88)

‘재미 공동체(다음)’에서 ‘지식공동체(네이버)’로의 이동이다. (p.90)
새로운 형태의 ‘인정투쟁’이다. 가끔은 파워블로거가 되어 온라인상의 지식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p.96)
 권력구조는 바뀌고, 지배의 양상 또한 변화하게 되어있다. 네트워크적 지식의 등장은 계층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구조의 변화를 가속화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는 소설, 음악, 영상의 재미가 포괄적으로 편집된, 총체적 경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11)

원근법의 소실점은 철저히 권력적이다. 서구의 과학적 사고는 바로 이 권력을 아주 은밀하게 은폐하려는데서 출발한다. (p.145)

‘객관적으로 보다’와 ‘창문으로 세상을 보다’는 같은 읭미다. (p.146)
원근법은 객관성의 약속인 동시에 주체성의 발견이다. (p.155) 

재현은 단순히 공포 극복의 수단만은 아니다. (…) 인류의 창조성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신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에서 구성된 모더니티의 핵심은 바로 ‘관점의 통일’에 대한 강박이다. (…) 시선 자체가 권력이 된다. (p.173)
결국 문화를 바꾸는 것은 (…) 공간편집을 달리 하면 된다. (…) 문화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작동한다. (p.212) 
개인 혹은 사회, 문화라는 개념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졌다. (p.260)
근대 이전의 문헌에서 각 개인의 연령이 정확히 기록된 겨우는 거의 없다. 개인의 나이따위는 한 개인을 설명하는데 그리 중요한 카테고리가 아니었다. (p.265)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p.283)

경제적 부를 문화적 수준과 동일시 하고, 세계의 나라를 일렬로 세우는,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세계관이다. (p.287)

문화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갑자기 만들어지는게 아니라는 거다. 근대를 지나며 세계사를 이끈 유럽의 자부심이다. 오만함일 수도 있다. (p.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