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달은 여유가 부족해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일부러라도 만들어야하는 건데..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혔다 해야하나

어쩔수 없이 나도 하부구조 인간… 고상한 척 하지 말아야지

<지적자본론>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 전공관련 서적이다. 대학생 때는 책 귀한 줄 몰랐기에 도서관에서 별별 책들을 읽었었는데, 소장용으로만 구입해야 하는 지금은 전공서적은 잘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높은 관념을 열망하는 나의 욕심에서 고전만을 고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자본론>의 제목은 굉장히 멋드러졌다. 뭔가 고고한 사상을 가졌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저자도 여러 번이나 말하듯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는 그냥 다른 이야기다. 어렵지도 않고 경제에 대해 파고드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철저히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시선은 어느 곳을 집중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말해준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겹도록 ‘고객의 시선’을 말한다. 29년동안 자신은 그것만을 중시하며 모든 것을 기획해왔다고 말이다. 고객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소비하는 사람을 보통 명시한다. 그래서 보통 경제관련 서적이 아닌 이상 ‘고객’이란 말은 많이 쓰지 않는다. 돈 밝히는 내용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중시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배운 도덕관념은 이제 다르게 교육되어야 한다. 반대로 자본의 정확한 목적과 소비자와 기업가의 사고의 차이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도덕을 다양하게 만들지 않을까. <지적자본론>의 저자 마스다무네아키처럼 말이다. 그는 고객에서 돈을 갈취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가의 시선에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시 들여다 볼 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고객의 소비와 삶의 질적 변화이다. 난 그의 초지일관된 집중의 방향이 놀랍고, 부럽다.

줄곧 예시가 된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서점의 부진이유는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p. 67)이라 한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이유를 보려 책장을 넘기기 전, 이 문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책은 정말 풍부한 콘텐츠 덩어리인데, 왜 분위기만 좋은 사진 한 장에도 밀리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물으면 안되었다. 책은 왜 ‘여기 가보고 싶다’는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할까, 가 더 재미난 생각거리를 만들 것 같았다. 우린 너희와 근본적으로 질이 달라, 라는 시대 뒤떨어진 명예를 강요하기에 ‘노잼'인 것이다. 그러니 맞는 말도 좀 가다듬고 돌려서 말해야 듣고 싶어진다. 책의 플랫폼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거리가 충분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참 행복한 사람같았다. 이토록 확신하는 바가 있고, 그 확신은 증명되었으니. 이 사람의 생각을 통째로 가져오고 싶다.. 구글은 이세돌 이길 궁리말고 생각 이식에 대해 솔루션을 달라!!! 라고 책을 덮으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제안능력’이 있어야 한다. 플랫폼은 (…) 단순히 ‘선택하는 장소’일 뿐, 실제로 선택을 수행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p.49)
현실세계가 인터넷에 대해 우위를 설 수 있는 여지(…) 예를 들면, 즉시성이다. (p.105)
편안한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은 지적자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p.108)
회사를 축소하자! 좀 더 휴먼 스케일을 갖춘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p.126) 
고객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가져온 해답은 결국 독선적인 의견일 뿐이기에 (p. 140)
그러나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지적자본이 대차대조표에 실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량화할 수 없는 감각이야말로 행복과 가까운 것이 아닐까. (p.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