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

다.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 작가 서문 중(첫 문단)

책을 덮고 다시 1장으로 된 서문을 읽으니, 거의 200쪽에서 생택쥐페리 자신의 비행과 담론을 이야기한 모든 것이 서문에 담겨 있었다. 특히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

워낙 개인적인 문체로 이루어져서, 소설인지 에세인지 헷갈리며 읽어나갔다. 생텍쥐페리의 경험담이라고는 나중에 알아서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소설이라고 읽으니 좀 재미가 없어서 건너뛴 문단도 많았는데.. (반성반성)

읽으면서 생각난 작품으로는 <숨그네>(헤르타뮐러)와 영화 <레버넌트>이다. 이는 내 관점으로 연결지었는데, 삶 자체에 대한 강렬한 욕구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인 “왜 저렇게까지 살고 싶을까?”

<레버넌트>를 보면서 몹시 궁금했다. 강렬한 증오와 강렬한 사랑이 이끄는 주인공 삶의 방향은 과연 어딜까. 그 대답의 힌트를 <인간의 대지>에서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내 질문이 잘못되었었다. 그가 사랑하는 건 위험을 무릎쓰는 모험이 아니라 삶이다. 그가 사랑하는 삶은 수단이 아니기에 방향은 없다.

<인간의 대지>는 생택쥐페리가 자신으로, 인간으로, 존재 자체로 고뇌하는 과정이다. 비행을 하며, 사막을 걸으며, 별을 보며. 그가 겪은 인상적인 경험 중에 그가 만난 노예 ‘바르크 영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자본주의가 낳은 또 다른 계층, 노동자에 속하는데, 내게 나도 모르는 노예근성이 있진 않은 지, ‘자유’가 주는 가벼움과 ‘관계’가 주는 무거움에 대해 생각해 본 재미있는 장이었다.

나를 대지에 붙드는 보이지 않는 중력은 ‘개인의 자유’임과 동시에 나를 묶는 ‘관계’라는 것. 그 균형에서 나는 숨쉬고 있다는 것. 난 그 중간을 잘 지키고 있는 지, 무엇보다 그 사이에서 나는 행복한지.

 


 

하지만 기계는 목적이 아니야. 비행기는 목적이 아니라네. 그것은 연장일 뿐이지. 쟁기와 같은 연장말일세. (p. 58)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빼내야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네. (p.60)

거리란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는 단위가 아니다 우리집 정원의 담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많은 비밀을 감쌀 수 있다. (p.77)

그 집 사람들은 설명을 결명했다. 그렇게 여유만만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p. 80)

이 너무나 아름다울 때면 비행 중인 우리는 비행기가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둔다. (p. 91)

정한 풍요로움은 오직 이곳 사막에서만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p.109)

한 인간의 죽음 속에서 미지의 한 세계가 죽어가고 있었다. (p.115)

는 주인의 호의를 노예의 기쁨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인간관계의 무게가 없었다. (p. 124)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p. 177)

소명 의식이 있어야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그 소명 의식 자체를 해방시키는 일도 필요한 것이다. (p.189)

자네만이 유일한 재판관이다. 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지니까. (p. 200)

그렇다. 당신이 옳다. 당신들 모두가 옳다. (p. 203)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원사의 관점이다. (…) 그것은 바로 저 인간들 한 명 한 명 안에 죽어가는 모차르트다. (p.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