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동안 천천히 곱씹으며 읽은 <담론>. 신영복 교수님의 다른 책 <강의>도 오래 걸렸었는데, 같은 이유로 천천히 읽게 되었다.
느리게 읽기, 천천히 흡수하기를 실천하게 되는 책이랄까. 신영복 교수님의 철학을 잔잔히 느끼는 과정이었다. 문체가 그렇기도 하고,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가 그런 성격을 띄고 있기도 하다.

<담론>은 아하! 하는 소름돋는 인사이트를 주는 책은 아니다. 날카로운 문체는 아니지만 그 농도가 짙고 깊이가 느껴진다. ‘지혜’를 배우는 한 걸음 한 걸음이었다. 책을 펼칠 때마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이 된 마냥 목소리에 집중하고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겉으로 보기엔 고전, 동양, 우리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으며 먼 미래까지 염두해둔 우리만의 걸음을 만들어가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오래되서 낡아보이지만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인 진실을 믿고 전한다.
어렵고 돌아가는 방법처럼 느껴졌지만, 그 길은 오히려 직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현실로 가져와 지금 여러 문제가 들끓는 우리 사회를 직시하는 방법, 날카로운 잣대로써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신영복 교수님은 진보지식인으로 불린다. 예전 통혁당 사건에도 연루된 것부터, 신자유주의,  극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는가?”라는 많은 의심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요즈음 천천히 곱씹으며 읽으면 좋은 책이다. 욕심같아선 맑스의 자본론이나 피케티 교수의 책을 읽으면 참 좋겠지만 넘나 외국인 것… 텍스트 문화가 동떨어진 것…

‘감옥’이 최고의 인문학 대학이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같은 환경에서도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달랐다는 것이다. 자유가 박탈당한 20년을 창살로 실처럼 비추는 햇살덕분에 살수 있었다고 말하는 신영복 교수.
톨스토이 <부활>에서 한 정치범의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가 하는 정치단체를 조금 도와주다가 감옥에 오게 되었는데, 그 감옥에서 목격한 죄없는 죄수의 사형집행을 목격한다. 그때부터 혁명가가 되었다는 한 남자.
신영복 교수도 어쩌면 감옥이 그를 더 짙은 혁명가로 만든 것 같다. 단순히 반발하는 혁명가가 아닌 깊은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혁명가.

“그래요… 그때부터 저는 혁명가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 <부활> 중


 

필사한 문장이 정말 많아서 다 타이핑하기는 어렵고 다시 읽으며 기억에 남았더 문장들을 남기려고 한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p.19)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의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섬입니다. 더구나 장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p.110)

무로써 관기묘, 그 오묘한 것을 보아야 하고, 유로써 관기요,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합니다. (p.124)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어 가기를 결심하는 변화의 시작입니다. 탈주이고 새로운 ‘관계의 조직’입니다. (p.198)

아름다운 꽃은 훨씬 훗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미래는 더 먼 미래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씨앗과 꽃과 열매의 인연 속 어디쯤 놓여있는 것이지요. (p.200)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p.240)

존재는 확률이고 가능성입니다. (…) 접속과 배치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개념 ‘관계’입니다. (p.282)

황하의 오랜 잠류를 견딜 수 있는 공고한 신념, 그리고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p.409)

수 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p.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