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 p. 16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
p. 133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름녀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 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 p. 134
크리스마스 휴일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말아먹어버린 <아침 그리고 저녁>. 심지어 그 맛에 심히 감명받은 나머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무겁게, 가볍게, 오랫동안 진하게 남아있다. 이야기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단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135쪽의 짧은 이 소설은 Part 1, 2로 나누어져 있다. 모두 요한네스의 이야기다. 하나는 태어나는 요한네스,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요한네스. 그 둘은 하나의 핏줄이다.
Part 1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장면을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두 번째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는 늙은 요한네스가 죽어가며 저 너머의 세상으로 건너간다. 이 두 이야기는 교차지점에 있다. 태어나고, 죽는다, 죽어서, 살아진다.
이 소설의 황홀한 지점은 마침표가 없다는 것. 쉼표만으로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야기 그 자체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형식이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되는 아름다움을 해내었다. 인물성, 시대 배경, 상황, 장르, 모든 것이 없는 이 소설은 전체가 한 편의 시 같아서 책 어디든 펼쳐서 읽어도 연결된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교차점, 그 둘은 다르지 않고 같으며, 같지만 또 다르다. 늙은 요한네스가 죽어서 건너가는 과정 또한 새로 태어나는 과정만큼이나 힘겹고, 희망찼다. 태어나서 큰 숨을 쉬어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죽는 것 또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큰 숨 한 번, 그거면 된다.
눈 내린 크리스마스이브, 기차 안
BGM 내 이야기는 허공으로 날아가 구름에 묻혔다 - 김오키, 서사무엘
https://youtube.com/shorts/-WqsZ14ATBU?si=QcgCwq9XJLXX1uOJ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록한 책들. 구의 증명,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여름의 빌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1) | 2024.03.25 |
---|---|
할머니에서부터 나에게까지,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0) | 2023.10.09 |
<도둑맞은 집중력> 이거 맞아? 이렇게 계속 일해도 돼? (0) | 2023.07.02 |
실패했던 사랑의 최종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 보통 (0) | 2017.04.01 |
<숨쉬듯 가볍게> 김도인 (0) | 2016.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