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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살아지는 삶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by Summer_bom 2023. 12. 29.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 p. 16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
p. 133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름녀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 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 p. 134

 
아침 그리고 저녁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가 욘 포세에게 주어졌다. “입센의 재래”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라 불리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활동하는 극작가 중 한 명으로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희곡 외에도 소설, 시, 에세이, 그림책, 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작품을 써왔고 세계 40여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작품은 군더더기를 극도로 제한하는 미니멀한 구성, 리얼리즘과 부조리주의 사이에서 표현되는 반복화법, 마침표를 배제하고 리듬감을 강조하는 특유의 시적이고 음악적인 문체를 통해 평범한 일상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문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예리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벅차고 다소 겁이 난다. 이 상은 무엇보다도 다른 이유 없이 문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_욘 포세(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직후 노르웨이 출판사 Samlaget와의 인터뷰에서) “전화가 왔을 때,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놀라지 않기도 했다. 그 전화를 받은 건 큰 기쁨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노벨문학상) 논의의 대상이 되며, 나는 다소간 조심스럽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준비해왔다.” _욘 포세(노르웨이 공영방송 NRK와의 인터뷰) 욘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다.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발표 이후 현재까지 수십 편의 희곡을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렸고, ‘입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서 언어가 아닌 언어 사이, 그 침묵과 공백의 공간을 파고드는 실험적 형식으로 ‘21세기 베케트’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00년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출간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노르웨이어를 빛낸 가치 있는 작품’에 주어지는 멜솜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희곡보다 소설 쓰기에 더욱 집중할 것을 선언하고, 2014년 유럽 내 난민의 실상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이중적 면모를 비판한 연작소설 『3부작』(『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 2022년 장편소설 『7부작』(『I-II 다른 이름』 『III IV V 나는 또다른 사람』 『VI VII 새로운 이름』) 등을 발표했다. 1992년, 2003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노르웨이어로 쓰인 최고의 문학작품에 주어지는 뉘노르스크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스웨덴 한림원이 스웨덴과 노르웨이 소설에 수여하는 도블로우그상, 2003년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2005년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브라게상 명예상, 2007년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2010년 국제 입센상, 2015년 북유럽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3년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2005년 노르웨이 국왕이 내리는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살아 있는 100인의 천재’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포세의 작품은 당신의 가장 깊은 감정과 불안, 불안정성, 삶에 대한 고민, 죽음에 접근한다. 포세는 언어적으로, 지형적으로 강한 지역성을 모더니즘적 예술 기법과 결합해낸다. 그가 쓴 모든 것은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희곡, 시, 산문을 막론하고 그의 작품에는 휴머니즘에 대한 호소가 담겨 있다. _안데르스 올손(한림원 위원장)
저자
욘 포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9.07.26


크리스마스 휴일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말아먹어버린 <아침 그리고 저녁>. 심지어 그 맛에 심히 감명받은 나머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무겁게, 가볍게, 오랫동안 진하게 남아있다. 이야기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단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135쪽의 짧은 이 소설은 Part 1, 2로 나누어져 있다. 모두 요한네스의 이야기다. 하나는 태어나는 요한네스,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요한네스. 그 둘은 하나의 핏줄이다.
Part 1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장면을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두 번째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는 늙은 요한네스가 죽어가며 저 너머의 세상으로 건너간다. 이 두 이야기는 교차지점에 있다. 태어나고, 죽는다, 죽어서, 살아진다.


이 소설의 황홀한 지점은 마침표가 없다는 것. 쉼표만으로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야기 그 자체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형식이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되는 아름다움을 해내었다. 인물성, 시대 배경, 상황, 장르, 모든 것이 없는 이 소설은 전체가 한 편의 시 같아서 책 어디든 펼쳐서 읽어도 연결된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교차점, 그 둘은 다르지 않고 같으며, 같지만 또 다르다. 늙은 요한네스가 죽어서 건너가는 과정 또한 새로 태어나는 과정만큼이나 힘겹고, 희망찼다. 태어나서 큰 숨을 쉬어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죽는 것 또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큰 숨 한 번, 그거면 된다.

 

눈 내린 크리스마스이브, 기차 안
BGM 내 이야기는 허공으로 날아가 구름에 묻혔다 - 김오키, 서사무엘

https://youtube.com/shorts/-WqsZ14ATBU?si=QcgCwq9XJLXX1uO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