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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서부터 나에게까지,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by Summer_bom 2023. 10. 9.

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할머니도 나도 모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할머니의 백발과 나의 흑발이 동시에 살랑인다. (…) 나는 무대에 서서 수십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 중 살아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p.29

우리는 더 이상 천둥번개에 울지 않는다. 우리를 울리는 건 다른 문제들이다. p. 90

찬바람이 불면 왠지 속이 깊어져야할 것만 같은데, 더 잠잖아지고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만 같은데, 아마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p.101

자신의 안팎을 오로지 혼자서 가꿔온 사람도 있을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이제는 내 삶이 타인들의 시선에 대롱대롱 매달린다는 것을 어떤 유감도 없이 이해한다. p.137

우정은 서로에게 좋은 대명제를 주는 일. 돌아가면서 핀 조명을 쏘아주는 일. p. 138

잘 써야만 하는데 자신이 없는 원고를 마주할 때면 서툰 수영 실력으로 파도에 담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 그러니까 이것은 인생을 감당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p. 212

 
짧은 연휴동안 두 여자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현재를 뜨겁게 살아가는 젊은 여자 이슬아 작가와 뜨겁게 살다 세상을 따끈하게 데워 놓고 가신 고 박완서 작가의 글이다. 이슬아 작가는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말하고 싶다 하고, 박완서 작가는 아직 기대에 부풀어 사는 노인이고 싶다 한다.

이슬아 작가는 쉬지 않고 감사하고 쉬이 서글퍼하며 그 마음을 글과 행동으로 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요가원이 팬더믹으로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빵을 한 가득 사서 선생님의 집 앞에 두고 왔다는 이야기에서 마음 한 켠이 아릿했다.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시골 강연에서 한 백발의 할머니가 “작가님이 꼭 결혼하면 좋겠어요. 애도 낳고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어요? 나는요.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라고 했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그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분명 다른 삶이라 느껴진다. 마침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그녀의 결혼 소식이 올라왔다. 엇비슷한 매일 속에서도 이슬아 작가가 보는 시선과 그 시선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충돌들의 이야기가 나도 궁금해져 설레인다.

이슬아 작가는 할머니에서부터 자신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계보를 자주 얘기한다. 자주 등장하는 이슬아 작가의 엄마는 복희씨다. 우리 엄마 선희씨가 떠오른다. 나를 ‘봄아’라고 부르며 환하게 웃는 데 그게 참 예쁜 선희씨. 그녀와 나는 닮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닮고 싶은 점도 많고, 그렇게 살기 싫은 점도 많다. 계보라는 건 우리가 쭉 이어져온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만들어지겠구나 생각하니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내가 써내려가고 싶은 내 이야기가 곧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끝내주는 인생
끝내주는 인생이 여기 있다. ‘일간 이슬아’ 너머 더 깊고 넓고 고유하게 펼쳐질 이슬아의 세계에 관한 끝내주는 은유!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 이슬아는 거듭 헤아린다. 이슬아의 유래와 잊힌 여자의 계보를 쫓으며 명랑한 기세와 단정한 연민과 첨예한 감각의 서사를 펼쳐낸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게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삶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듯이.” 2023년 첫여름,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부지런한 혁명가”로 호명되는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이 출간되었다. 2018년 셀프 연재 프로젝트 ‘일간 이슬아’로 출판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이슬아가 데뷔한 지 다섯 해가 되었다. 이슬아는 산문은 물론, 인터뷰, 서평, 칼럼, 소설, 드라마로 글쓰기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며, 바야흐로 ‘이슬아의 시대’라고 할 만한 굳건한 성취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슬아는 성취의 자리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다. 이슬아는 불공정한 현재와 기후재난의 미래 사이에서, ‘이슬아의 유래’와 ‘잊힌 여자의 계보’를 쫓으며 ‘신인(新人)’의 각오를 다진다. 오랜 친구 앞에서 쉬이 무너지기도 하고 한껏 야해지기도 하면서 우정의 새로운 면모를 부지런히 찾아낸다. 자신을 향해 뜨겁게 환호하거나 차갑게 폄훼하는 익명의 대중이 아니라 태권도장 아이들, 요가원 언니들과 일상의 우정을 쌓는다. 전업작가의 삶을 불안해하면서도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과 지구의 안위를 헤아리고 당부한다. 오늘도 뛰고 쓰고 노래하며 끝내주는 인생을 가슴에 품는다. 이 산문집은 ‘일간 이슬아’ 너머, 더 깊고 넓고 고유하게 펼쳐질 이슬아의 세계에 관한 끝내주는 은유다.
저자
이슬아
출판
디플롯
출판일
2023.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