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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 그 남자의 인간적이지 않은 시간.

by readingcats 2016. 9. 13.

 

사실은 다른 책을 읽으러 갔는데,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묘한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다. 앉아서 곧바로 1시간 반만에 다 읽었다. 단순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작가의 고민과 나름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어서, 함께 토론하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말하는 초반 장면부터 작가의 생각의 범위가 넓고 또한 깊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관념을 소설 자체로 풀어냈다는 것에 놀라웠다. 소설 전체가 주인공 같았고, 작품이었다.

금방 읽을 수 있고,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 같아서 함께 읽고 이야기한다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이야기하면서 느낌이 풍부해질 것 같은??..
남성성이든지 여성성이라든지 말로써 규정하는 것을 반기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여성성이 강했다. 그래서 주변 여자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뒤에 편집자도 말하지만, 나 또한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섬세한 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을 부단히 스토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소장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까지 솟구치지는 않았다. 대신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 작가는 그렇게 쉽지 않은 고민을 갖고 소설을 구성해 나갔지만,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재밌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약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알콜은 적당히 걸친 것 같달까. 나는 읽으면서, ‘인간적’이지 않은 초월적 소설의 흐름에서 신비롭다는 평이 많다. 내가 요즘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지.. 주인공의 생각에서 특별히 신비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시간에 부여한 의미가 너무 큰 건 아닐까?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읽은 뒤 시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 시간을 작품으로써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소설을 만났다. 뭐랄까, 관념적으로 떠돌던 생각 중 하나가 실행된 하나의 작품을 본 느낌이랄까. 그래서 고맙기도 하다.
작가가 정의하는 ‘시간’은 흐름이 아니다. 어떠한 역사 속에 속해 있는 사건이 아니고, 그저 사건과 사건일 뿐이다. 현재의 무수한 반복같다는 점에서 니체에서 영향을 받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정의하는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문학이었다.

 

 


 

처음이라든가 시작이라든가 하는 말은 굉장히 인간적인 거야. (p.10)

트렌드라는 게 말이에요, 절대로 가난한 동네에서 부자동네로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어요. (p.53)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p.54)

내가 호치키스 같은 거라도 하나 발명하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난 그런 것도 발명하지 못하잖아. (p.82)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 p.87)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 (p.127)

우주 알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나는 네가 있는 곳으로 갔어. 나는 복권과 경마로 부자가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런다면 네 곁에 머물 수 없었지. (p.143) 

나한테 남은 문제는 이거였어. 네가 이 마지막 때문에 우리 관계를 온통 불행했던 것으로, 비극적인 것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보통의 시간 순서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사와 삶을 중시하잖아. (p.144)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같은 말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p.148) 

나의 시간을 살고 싶어.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