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10-28
우리에게는 아직도 강력한 이상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소비사회에 적합한 시민이 되기 위한 시민의식을 되찾아주는 이상주의다.
책의 양이 많고, 또 어려운 내용을 다뤄서 읽는 데에 오래 걸렸다. 내용 이해도 어려웠지만, 인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말을 했는지 사전 지식이 없으니 더 힘들었다.
그래도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렴풋이 알 것같다. 지극히 ‘미국’이라는 나라 내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라 거리감도 느껴졌다. 동일 저자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보다 더 공공의 선, 또는 공공철학을 주장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한국 사회에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미국은 전체 역사가 짧지만, (현대)민주주의의 역사는 가장 오래 되었다. 토론이 자리 잡혀있는 사회에서나 가능할 이야기처럼 들렸다.
기대치보다는 별로였지만, 추천할 만은 하다. 미국에서 민주정치가 어떤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간략하게 나마 볼 수 있었고, 그에 대입해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정치가 성장하는지, 또는 오히려 퇴보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 ‘성향’이라는 것은 아무리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이도 그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읽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했다. 책에서는 도덕적으로 논의될 만한 큰 사건을 들어가며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난 제대로 분노나 동의를 표출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민주정치의 발전은 주권을 가진 개인에 의해 발전한다는 내용은 나에게 고민을 심어주었다.
다시 읽어야지. 마이클 샌댈 교수의 영상 강의를 보고 나서, 이해가 안 가는 곳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이해를 못한 게 워낙 많기 때문에.. ;ㅎ 어렴풋이 이해한 그의 주장에는 완벽히 동의하진 않는다.
저자는 종교적 신념까지도 정치에 포함시켜 도덕과 정의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이 토론이, 나는 과연 종결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과를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학생들끼리도 전혀 서로의 의견이 좁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이성을 바탕으로 다시 처음부터 논의해보자는 그의 주장은 너무 ‘이상적’은 아닐까.
앞선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지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의’에 대해 다루면서 ‘도덕’을 살짝씩 건드렸다가, <왜 도덕인가>에선 본격적으로 샌델 교수가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낸다. 전략은 좋았지만 앞서 들었던 비유와 인용이 반복되는 것이 많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의 의도가 ‘한번 더 깊게 생각해보자’라는 것이었다면 나를 너무 부지런한 인간으로 착각한 것이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픈 ‘낙태’라던가 ‘인공수정’문제를 다시 펼쳐보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찌들어있는 나에겐 힘든 것이었다. 되도록이면 중립을 취하고 그런 논쟁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 깨달았듯이,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하니까.. 형이상학적으로 말해지는 것보다 일상에서 그 관념이 어떤 맥락에서 풀어지는 지 생각하는 것은 모두의 몫일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은 고객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순히 국민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p.41)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하기도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와 상업의 차이점이며 애국심과 브랜드 충성도의 차이이다. (p.42)
상업주의는 수많은 이익을 제공하지만 명예와 자존심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시장의 해법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의 성격을 훼손시킨다. (p.73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영광과 분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도덕 감정이다. (p.75)
법으로 정의할 순 없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의 문제들은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p.79)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신뢰는 강화되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주장은 폄훼된다. (P.85)
그들은 국가통치술이 영혼통치술로 전환되는 곳에 강압정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강요해서는 안되며, 모두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으 부여해야 한다. (p.129)
(…) 우리에게는 아직도 강력한 이상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소비사회에 적합한 시민이 되기 위한 시민의식을 되찾아주는 이상주의다. (p.142)
그에 대한 대답은, 모든 도덕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도덕을 법률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인식때문이다. (p.156)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빼앗으려 하거나 이익을 얻으려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 뿐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정의는 서로 앞을 다투는 가치 및 목적들의 경쟁을 ‘규제하는’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정의는 그러한 목적들과는 별개의 구속력을 가져야 마땅하다. (p.179)
칸트는 기껏해야 이렇게 물을 뿐이다.
“의무여! 당신에게 합당한 가치를 지닌 원천은 무엇이며, 당신의 고귀한 혈통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p.180)
“철학은 철학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도구가 되는 것을 멈추고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되고 그것이 다시 철학자들에 의해 계발될 때 비로소 살아날 것이다.” (p.205)
20세기 초반의 미국인들은 점차 스스로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개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생활이 자신의 삶을 침식시키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p.212)
“위대한 사회가 위대한 공동체로 전환될 때까지 대중은 영향력을 잃은 채 남게 될 것이다.” (p.214)
인간의 권리를 명시하는 정의원칙들은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갠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 (p.219)
그러나 우리는 정의와 권리에 대한 심사숙고가 도덕적, 종교적 이상을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근거 또한 없다. (p.252)
그러나 롤스는 어떤 권리들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수의 욕구로 인해 그 권리들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p.263)
공적 문제와 관련된 도덕적 영역을 다루는 정치 의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의 관심사는 공무원의 개인적 악덕으로 옮겨간다. (p.295)
우리는 독립적인 자아로서 선택의 자유를 지닌 인간답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이해와 통제를 뛰어넘는 비인간적 권력구조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특히 두드러지는 시민 덕성은 때로는 주어진 의무를 수용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자신의 길을 협상하고,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p.304)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발을 들여놓기 두려워하는 영역으로 거침없이 돌진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이 택해야 할 해법은 도덕적 논의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p.318)
근본적인 문제를 옳음이 좋음에 우선하느냐이다.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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