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런 건 굉장히 잘 알아. 무슨 논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알게 돼.”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p.22)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날 밤을 경계로 이미 나는 죽음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이미 갖추어졌고, 그런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장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이 편지도 벌써 열 번이나 다시 쓴 거야. 글을 쓴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거든.

“(…) 왜 남자애들은 긴 머리를 좋아하는 거야? 그딴 거 완전 파시스트 아냐? 한심해. 왜 남자애들은 머리 긴 여자애가 우아하고 마음도 상냥하고 여자답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말이야, 머리는 길지만 천박한 여자애를 이백오십 명은 알아. 정말이라니까.” (p.93)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p.102)

“(..)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p.137)

건조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지붕들과 연기나 고추잠자리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따스하고 친밀한 기분에 젖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런 기분을 남겨 두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의 입맞춤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뒤틀림을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 거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고. (p.155)

“기다림은 고통스러워.” 레이코 씨는 공을 튀기면서 말했다. (p.202)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은 고작 30센티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치 몇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227)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오코의 몸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나오코의 몸은 몇 가지 변모를 거친 끝에 지금 이렇게 달빛 속에서 완벽한 육체로 새로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만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너 혼자라도 가줘. 날 기다리지 말고.
(…) 나를 언제까지나 기억해줘.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그녀가 괴로운 꿈을 꾸지 않도록 나는 기도했다. (.p.286)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이라고 나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일요일에 나는 태엽을 감지 않는다. (.p.337)

시간조차 나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흘렀다. 주위 사람들은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와 내 시간만이 수렁에 빠져 질퍽질퍽 제자리를 맴돌듯이 걸어갔다. (.p.395)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을 흘려보내면 둔중한 통증이 남았다. (p.426)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야.” 미도리는 내 목에 볼을 대고 누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가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와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 갔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았다.
(…) 거기에서는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냥 죽음이야. 마음에 두지마.”하고. (p.453)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죽은 자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기즈키는 열일곱인 채로, 나오코는 스물하나인 채로 영원히. (p.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