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보다, 나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에서 더 끌렸다. 특히 표지에서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회화 작품이 쓰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은 한 장을 넘기기 전부터 나의 기대감을 이미 충족시켰다. 충족시켜 주었다기 보다는 내가 압도 당해버렸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느껴지면서, 거창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떠도는 영혼의 이야기같았다.
이미 친구에게도 추천 하고, 읽게 만들었다. 친구도 대만족. 특히 남자보다는 여자가 좀 더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섬세하고 부서질 듯 여리며, 감정에 호소하는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성성을 약하게만 표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부서질 듯 여린 감성은 치유와 극복으로 대체된다. 부서져 보지 않은 자,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듯이.
어떤 소설이든 마찬가지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딱딱한 편견으로 이해하려 하면 부딪힌다. 무지의 세계, 상실의 세계에서 허심탄회하게 받아 들일 때, 이 소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한 번 읽고는 다시 잘 읽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결과를 이미 알기 때문에. 좋은 영화는 또 볼 수록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듯이, 좋은 책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좀 더 내가 애를 쓰고 시간을 투자해야함에 있어서 빈도가 더 적다.
<노르웨이의 숲>은 게다가 분량도 꽤 많다. 한 권이지만 500쪽을 넘기면서 시선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무 곳이나 펼쳐서 한 줄만 다시 읽어도 소설의 분위기가 다시 나에게 훅하고 다가온다.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휩싸여 눈, 손을 때지 못했던 첫 만남이 그대로 생각난다.
지나고 보니, 주인공 와타나베에서 나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를 둘러싼 3명의 여자와 남자 한 명. 그 중에서도 나는 미도리가 제일 좋았다.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만남과 과정은 가벼워 보여서 간과하기 쉽지만 끈질기게도 이어져가는 인연이다. 나오코보다 더 강렬한 끈이라고 생각한다.
미도리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은 제멋대로라기 보다는 그녀 자체를 철저히 반영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변덕쟁이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미도리는 그녀의 말 그대로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p.437) 다.
민음사에서는 이 책을 거창하게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꼭 그렇게 거대 서사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나 싶다. 그냥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내 시간을 모두 가져가 버릴 만큼 매혹적이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듬성듬성 읽는 데, 읽을 때마다 재미없는 문장이 없다. 와타나베가 <위대한 개츠비>를 빠짐없이 재밌어 했듯, 내게 <노르웨이의 숲>은 빠짐없이 재미있는 책일 것이다.
필사
“난 그런 건 굉장히 잘 알아. 무슨 논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알게 돼.”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p.22)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날 밤을 경계로 이미 나는 죽음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이미 갖추어졌고, 그런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장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이 편지도 벌써 열 번이나 다시 쓴 거야. 글을 쓴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거든.
“(…) 왜 남자애들은 긴 머리를 좋아하는 거야? 그딴 거 완전 파시스트 아냐? 한심해. 왜 남자애들은 머리 긴 여자애가 우아하고 마음도 상냥하고 여자답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말이야, 머리는 길지만 천박한 여자애를 이백오십 명은 알아. 정말이라니까.” (p.93)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p.102)
“(..)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p.137)
건조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지붕들과 연기나 고추잠자리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따스하고 친밀한 기분에 젖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런 기분을 남겨 두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의 입맞춤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뒤틀림을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 거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고. (p.155)
“기다림은 고통스러워.” 레이코 씨는 공을 튀기면서 말했다. (p.202)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은 고작 30센티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치 몇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227)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오코의 몸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나오코의 몸은 몇 가지 변모를 거친 끝에 지금 이렇게 달빛 속에서 완벽한 육체로 새로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만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너 혼자라도 가줘. 날 기다리지 말고.
(…) 나를 언제까지나 기억해줘.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그녀가 괴로운 꿈을 꾸지 않도록 나는 기도했다. (.p.286)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이라고 나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일요일에 나는 태엽을 감지 않는다. (.p.337)
시간조차 나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흘렀다. 주위 사람들은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와 내 시간만이 수렁에 빠져 질퍽질퍽 제자리를 맴돌듯이 걸어갔다. (.p.395)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을 흘려보내면 둔중한 통증이 남았다. (p.426)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야.” 미도리는 내 목에 볼을 대고 누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가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와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 갔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았다.
(…) 거기에서는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냥 죽음이야. 마음에 두지마.”하고. (p.453)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죽은 자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기즈키는 열일곱인 채로, 나오코는 스물하나인 채로 영원히.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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