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p.110)
책을 읽기 전, 알랭드 보통의 TED 강연을 보았다. <피로사회>, <투명사회>에서 한병철이 뱉었던 날카로운 지적보다는 좀 부드러운 지적이었다. 그래서 알랭드 보통의 유머를 칭찬하나보다. 나는 태생적으로 유머가 부족해, 날이 서 있는 상태가 익숙하지만 <불안>은 나의 그 상태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가진 이 불안, 억울함, 울화를 설명한다. 설명하기보다는 보듬는다. 하지만 보듬기만하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내 주위를 맴도는 불안이 나의 탓이 아님을 조곤조곤 말해준다.
순식간에 읽어볼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진 책이다.철학적이고 사유적인 내용을 단순하게 풀어냈다. 철학이, 예술이, 교양이 우리 삶에서 ‘필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실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행하던 것들이다.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고, 직함으로 불리고, 매달 월급이 꼬박 들어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노예 상태에 젖어 들어버린 산업시대의 개인에게. 너무 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책 전부 보다는 메모한 글귀들을 계속해서 보고, 생각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보다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이 더 소장하고 싶다.
알랭드 보통의 견해나 사유는 많은 강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강연만으로도 공감을 하고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나의 생각’이 있기에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책 <불안>을 소장하기 보다는 알랭드 보통의 성찰을 더 소장하고 싶다. 언제든 꺼내보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이나 <피로사회>등에서 접했던 시각의 연장선이다. 또 알랭드 보통은 강렬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부’나, ‘성공’에 대한 그의 철학은 신자유주의가 자연스럽다고 느껴온 우리의 통념을 뒤엎는다. 내 주변을 지배하는 우연을 간과하고 성과주의 사회에 찌들어 스스로를 너무 핍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필사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p.34)
인류는 매년 완벽한 상태를 향해 진보한다는 세계관이 자리잡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제임스의 방정식에 따르면 이 사회는 요구를 잔뜩 늘여놓는 바람에 적절한 자존심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p.65)
프롤레타리아에게 잃을 것은 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감정은 적을수록 좋다. (p.104)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p.110)
승자는 운을 만든다. 이것이 현대의 주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피고용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굴러가게 하기 위해 치는 기름과 같다. 노동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 (p.124)
진지하게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 때문에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 쇼펜하우어, <소품과 단편집>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소설은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위계 관념에 상상의 평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p.159)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p.241)
우리가 시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 (p.277)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보헤미아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p.304)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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