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종결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나에게 말한다. 주변에서 ‘썸’을 많이 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진짜 사귀기 전이 가장 설레고 스릴있을 때라고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지만, 사실 전혀 동감하지 못한다. 사귀기 전, 마약한 듯 취해있는 그 상태를 즐기고 말 뿐이다.
베르테르에게 이루어진 사랑은 없었지만, 어느 누가 그에게 ‘썸’을 탔다고 할 것인가. 정식으로 만나기 전 단계의 감정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적 없으면서, 설렌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허비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이성을 유혹의 상대로 생각하면서 ‘나’를 소모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안도현의 시가 생각난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中 – 안도현
나를 한 줌 재로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랑을 논할 수 있을까? 그들이 논하는 것은 사랑의 정념이 아니라 위로 붕 떠서 땅에 내려 앉지 못하는 비누방울일 뿐이다. 그 무지개 빛에 취해서 감정을 돌아보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챙기고자 하는 ‘나’의 감정까지도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스릴만을 즐기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 인해 내가 구름이 되었다가, 밟힌 낙엽이 되는 기분은, 아니 그런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감정소비라면 왜 ‘철학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이라고 하겠는가.(또는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다 라는..)
베르트르에겐 슬픔과 죽음 또한 정열의 표현방식이었던 것일까. 그의 결말이 충격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다른 결말은 베르트르와는 어울리지 않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차에서 그녀에게 반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도.
사랑을 삶으로 여과없이 받아들인 그는, 죽음 또한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인다. 저항하지 않았다거나 이성적인 행동을 못했다고 해서, 그를 단순히 감정에만 치우친 격정적인 인간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언제부터 이성적이었던가. 이성이 감성 위에 올라서게 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합리적인 나의 어떤 부분 또한, 많은 실수들로 빚어진 실수의 합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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