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른 것들

올디벗구디, 우지원, 예술

by Summer_bom 2024. 4. 6.



내 세계가 또 조금 넓어진 것 같다.
예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내가 이걸 누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온갖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그것을 아름답게 돌려주는 이들이 있어, 그 덕에 또 살아간다.


홍대입구역은 거진 3년 만이었다. 언뜻 봐도 연령대가 참 달랐다. 내 시듦이 티가 날까 봐 서둘러 장소로 이동했다. 이젠 쉽게 나이 탓을 해버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겁이 많아지기보단 현상과 감각에 초연해지고 무심해지는 건 분명 사실이다. 아, 사실 겁이 많아지는 것이 맞다. 상처의 경험으로 단련해서 적절한 거리감을 두게 되고 벽을 쌓게 되면서 이제는 막무가내로 몸을 던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상처받기가 싫으니까.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여리고, 연기만 늘어갈 뿐이다.

우지원 님의 라디오 올디벗구디가 막을 내렸다. 작년 겨울 스포티파이를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후로 나를 버티는 하나의 축을 담당해 준 지원님의 목소리, 말씨, 마음씨였다. 그의 눈물로 지어진 이야기를 나는 그저, 손가락 하나로 누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라디오에 사연과 신청곡도 보내보고 그걸 읽혀도 봤다. 울적함에 잠긴 내 글을 그녀가 또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니 더는 무겁지 않고 나폴나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마시라, 했지만 나는 새로운 것도 듣고 예전 것도 또 듣고 하다가 공개 방송까지 찾아갔다.

그녀 덕에 알게 된 많은 밴드와 노래가 무수하다. 라디오가 치직 소리를 내며 끝나면, 그날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하나씩 재생하고 저장하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음악 취향이 원래도 얼터너티브와 밴드 사운드에 가까웠는데 음악은 BGM으로만 대하던 소비자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사운드 스타일, 그런 깊은 지식까지 없었다. 지금도 그런 건 없지만, 그 뒤에서 이루어지는 아티스트의 장르에 대한 탐구심과 끈질김으로 한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보다 더 처절한 것은 질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까마득히 조용한 집에서 냉장고만이 내는 소리에 운다는 우지원 님 같은 사람들의 질문과 감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음악이라는 것도.

음악을 해야만 하는 운명, 하지 않으면 신병이 나는 것처럼 앓을 것 같다는 그의 처절한 사랑 고백 덕에 다시 고마워진다. 아니, 정말로 신내림과 같다고 생각했다. 태풍 같은 장대비와 시나브로 젖는 안개비마저 그녀는 다 맞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대신해 울음을 받아내 주고 대신 울어주고, 그걸 음악으로 들려주는 사람. 그래서 다시 울리는 사람.
오늘 공연을 보며 신이 들려도 단단히 들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PMS 기간이 되면 냉정해 보이던 팀장님도 쉽게 운다. 앞으로 우지원 님 공연이 있으면 졸졸 따라다니는 조용한 덕질을 해보려고 한다. 30대 여성은 크게 나서긴 쑥스럽다.

공연이 끝나고 그에게 내 사연을 읽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끝날 때쯤 잠시 고민하다 오늘은 묻기로 했다 오늘보다는 다른 날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친구들과 팬들이 몰려들어서 타이밍 찾기도 어려웠다. 다음에, 어쩌다 그녀가 가끔 온다는 해방촌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내가 그 사연자라고 말해줘야지. 상상하니 또 나이 탓을 하며 쑥스러워진다.
 

'다른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23> 백현진씨  (1) 2023.12.10
요즘 듣는 것과 본 것  (1)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