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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에세이, 그림책 큐레이션이 좋았던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by Summer_bom 2024. 1. 28.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블루도어북스'에 다녀왔다.

마침 일요일 낮 시간에 1인 예약이 생겨서 빠르게 예매하고 찾아갔다. 들어갈 때부터 묘하게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잘 차려진 곳, 예약을 해야만 갈 수있는 곳, 유료 입장만 되는 곳에 누추한 내가 가도 될까. 가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아깝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것은 조용한 환대였다. 나긋나긋한 직원분이 차분하게 천천히, 이용방법을 알려주었고 충분히 숙지하도록 기다려주었다. 우산과 외투를 맡겨두고 따뜻한 커피를 부탁했다. 온도는 어두웠지만 책이 있는 곳에서 책을 알아보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책을 읽는 곳에는 조명들이 부족하지 않게 놓여져있었다. 정말 다양한 조명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발뮤다 랜턴 조명이 참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혼자였기에 테이블보다는 편하게 앉을 수있는 소파자리를 택했다. 이용 시간은 2시간. 난 여기서 뭘 얻어가야 할까. 머리와 눈이 바빴다. 내가 여기 온 목적, 글쓰기 모임에 작성해서 내야할 숙제에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이다. '영감'을 받기 위해서 책장과 문장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자주 하던 혼자만의 취미였다. 채를 들고 다니며 무언가 쓸 만한 것을 건지기 위해 이리저리 책장을 훝어보고, 하나씩 꺼내서 목차를 살피고 문장을 수집했다. 필사 노트에 잔뜩 적은 날이 가장 뿌듯했다.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건져올리기 위해 몇 시간씩을 도서관에 짱 박혀있었다. 좋은 문장이었고, 브랜딩이 멋진 일본의 샵이었고, 가고 싶어지는 회사였고, 따라하고 싶은 디자이너와 그래픽도 있었다.

 

블루도어북스는 기본적으로 큐레이션 책방이다.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의 취향에 대부분 기대있었고, 가까운 인플루언서들의 취향으로 꾸려져있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반가운 팬의 마음으로 흥미로울 수있겠으나, 나는 '반가움'은 있었지만 책 자체를 큐레이션하는 데에서는 아쉬웠다. 그들이 유명한 건 알겠지만, '책방'에 박제되어 소개할 만큼의 깊이있는 취향은 아니라 보여졌다. 모종의 책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의 추천 정도로는 괜찮겠지만.

이정도 되는 좋은 공간이 '취향 탐닉'정도로 느껴질 법해서 아쉬웠다. 책에 있어서 좀 더 깊이와 또렷한 접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예를 들어 책 등이 아니라 책 반대편으로만 꽂혀있는 '민음사 고전문학 서가'는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큐레이션은 아니었다. 세계 고전 문학을 큐레이션할 만큼의 재량은 어려워서 기획력으로 승부를 본 서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의 발길도 많은 편이 아니었고,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불친절한 큐레이션이었다.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고를까,에 대한 관찰과 깊이가 부족하지만 문학 코너는 마련이라는 의무감이 있었던걸까?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

상대적으로 에세이, 그림책 부문은 좋았다. 잘 몰랐던 에세이나 그림책을 많이 알게 되고 실제로 구매까지 하게 되어서 좋았다. 진열된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와 <김환기 에세이>를 읽었는데, 이런 책을 내가 굳이 찾아 읽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소개되고 발견할 수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게 큐레이션이 주는 힘인듯.

얼마나 잦은 주기로 큐레이션이 바뀔까? 인플루언서에 의지하는 한 큰 부분은 그대로 일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큐레이션이 기대되어야 자주 방문할 이유가 생길 것같다. 공간에 대한 즐김은 사실 인스타그램용의 1회성이지만 좀 더 깊이있는 큐레이션의 접근이 있다면 자주 방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