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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나의 좋은 습관: 필사

by Summer_bom 2016. 10. 2.

 

내 본격적인 필사의 역사는 21살때부터다.

그냥 책이 있는 장소가 좋아서 도서관에 자주 갔다. 가만히 앉아서 나는 무엇이든 끄적였었다.
제목이 좋은 책을 펼쳐서 좋은 문장을 적어보고, 예쁜 그림이 있으면 따라 그리고.

그렇게 나는 끄적이는 게 좋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을 하면 무언가 끄적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 구절이 많은 좋은 책을 많이 찼았다.

 

사실 글을 쓰는 건 피곤한 일이다. 많은 감정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혼자 글쓰면서 감정풀이를 하는 내게는 특히.
그래서 처음엔 필사만 했다. 좋은 감정을 준 문장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며 감정도, 생각도 정리해 나갔다.

종이책을 읽으면 꼭 필사를 하고, E-book으로는 밑줄을 표시한다. 그리고 전부 타이핑으로 한 번 더 필사한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꼭 2번의 필사를 하게 되는데,
첫 필사는 조금 감정적이다.
책에 몰입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요된 문장들을 공책에 옮겨쓰다가 보면, 그 감정은 더 부풀어진다.
한 문장을 필사하면 3번 이상은 읽게 된다. 그냥 읽고, 좋으니 다시 읽고, 쓰면서 다시 읽고.

 

2번째 필사는 독후감을 쓰기 위한 타이핑 필사다. 블로그에 올려야 하니 데이터화 시켜야 하니까..
이때는 감정이 좀 덜어져 있다. 노트에 적힌 내 글씨를 읽다가 보면 그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되살아난다.
별다른 메모없이도. 하지만 독후감이라는 한 편의 글을 써야 하기에 정리해서 쓰게 된다.

 

그래서 내 가장 솔직한 독후감은 '필사'에 있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 덜 솔직하다.
가장 솔직한 속 감정이 담긴 글은 처음 펼쳐보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공책에 꾹꾹 눌러담은 첫 번째 필사다.
그래서 처음 필사한 문장은 지금 읽어도 좋다. 아무 생각 거치지 않고 파팍, 가슴에 꽂힌 문장들이라.

 

같은 책을 읽고 서로가 필사한 문장을 나누다보면 이 사람이 평소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 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솔직한 글이 바로 필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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