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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당신은 어떤 사람이예요?

by Summer_bom 2016. 12. 4.
요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고민,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걸까? 그보다 어떤 사람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실 난 보여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내게 자꾸만 물어온다. 보미씨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등등... 나의 취향, 나의 관심에 대해. 나를 알고 싶다며.
날씨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이 다를 수 있고, 그 날의 감정에 따라 좋아지는 영화가 다를 수 있다. 닥친 상황에 따라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다를 수 있다. 날 둘러싼 상황은 이리도 유동적인데 내게 확고한 하나의 취향을, 관심을 물어올 때마다 나는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래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쉽게 의도적으로 정리해 본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
전 책을 정말 좋아해요.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데 러시아 문학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그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비오는 날은 기분이 묘하게 들떠요. 퇴근 후 갈 마음에 들던 카페와 그곳에서 책을 읽는 나, 그 장면을 만들고 싶은 설렘에서요. 카페는 꼭 창가 테이블이 있어야 해요.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비가 내리는 장면을 참 좋아하거든요. 아직 비가 내리는 구나, 하며 잠깐 바라봐요. 그 시간은 내가 세상 차분해지는 시간이예요.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얀 치홀트’예요. 이유는 별거 없어요. 제가 펭귄북스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예요. 서점에서 펭귄북스 코너를 떠나지 못하거든요. 그러니 그 아름다운 클래식 디자인을 완성한 디자이너에게 자연스럽게 애정이 갈 수밖에요.
숨가쁜 운동을 좋아해요. 복싱, 수영, 러닝이 그랬어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좋더라고요. 운동은 늘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요즘엔 다른 격한 운동을 고르느라 잠시 쉬고 있어요.
개울이 흐르는 산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간다면 바다가 좋아요. 고향인 대구에서 바다는 정말 귀한 풍경이거든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나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같은 바닷가의 당연한 풍경이 늘 이질적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여행지로는 바다가 있는 곳이 좋아요.
매일 아침, 일기를 써요. 2016. 12. 4. Sun. 'Morning'으로 모든 첫 문장이 시작됩니다. 가끔 잠오지 않을 때 'Mid Night’에 쓸 때도 있지만요.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아침시간을 정말 사랑해서 일어나서는 꼭 그 전날의 감정, 생각을 백지에 남겨요. 그게 하루에 에너지를 쏟는 시작입니다.
스포츠 중에선 야구를 좋아해요. 전 남자친구와 함께 야구장을 가고 나서부터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니, 사실은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늘 1등만 하고 있었던 때라 빠져들기 최고의 타이밍이기도 했어요. 바쁜 와중에도 4시간 짜리 중계는 항상 챙겨 봤었죠. 아, 중계로 자주 봐서인지 투수전이 더 재밌어요. 투수와 포수가 어떤 공을 던질까 선택하고 던지려는 그 찰나, 두 주먹을 불끈쥐게 되고 정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죠.
과일을 정말 좋아해요. 달거나 쓰거나 상관없어요.자취하는 지금 가장 못먹는 음식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과일장수 딸내미’라고 부모님이 놀릴 정도로 과일을 끼고 살았어요. 밥 대신 먹을 정도니까요. 그 중에서도 수박을 정말 좋아해서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수박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매장에 들어가, 어떤 물건이든 고를 때 우와 이거 예쁘다, 라며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건 늘 ‘보라색’이예요. 그러면 같이 있던 친구들이 말하죠. ‘역시 보라색이라 그런 거지?’. 언젠가 내 방에 꼭 하고 싶은 인테리어는 보라색 책만 모아 놓은 책장이예요. 상상만해도 미소가 나오고 힘이 불끈 솟네요. 저의 에너지원 중에 하나예요.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예전엔 말하는 걸 더 좋아했는데 요즘 듣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인 걸 알게 되었어요. 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 것 같아요. 다양한 타인에게도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여유랄까. 밤을 꼬박 새며 즐겁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사람과는 정말 오래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가장 큰 사람은 ‘언행불일치’예요. 말을 굉장히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어요. 농담삼아 한 말은 제껴 두고서라도, 평소에 하던 말과 다르게 행동하고 그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사람들과 같이 있기 불편해요.
그래서 제게 가장 멋있는 사람은 머리에서 발 끝까지 같은 사람이예요.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고 되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게 누구든요.
요즘엔 재즈를 자주 들어요. 예전부터 즐겨 들었었는데 영화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의 인생과 트럼펫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만의 끈적한 달달함이 있는 'My valentine'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이런 식의 내용은 꺼내려면 더 꺼낼 수 있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다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이 없는 나의 소개이지만 과연 이게 나를 말해주는 것들일까? 라는 의구심이 쓰는 내내 들었다.
그래, 이런 것들은 다 표면적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취향일 뿐, ‘나’는 아니다. 나는 훨씬 더 복잡하거나 훨씬 더 단순한데 이렇게 꺼내어지는 취향들은 그에 비해 너무 가볍다.
순간을 가장 소중히 생각해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하는 나는 그 순간에 본 영화, 책, 함께 있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같이 있는 사람과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매 순간 달라지는 데, 그런 내게 ‘너를 기억할 무엇이든 하나’를 보여달라는 건 무서운 압박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어딘가 불편해, 이상해, 라며 방황하던 마음을 집중시켜 준 건 최근 본 한 영화였다. 지금 가장 로맨틱한 영화, 홍상수의 <당신과 당신자신의 것>.
주인공이 상대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 '나를 처음 본 것처럼 그렇게 대해줘. 나에 대해 알던 것들은 접어두고’.
 
이 고민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시작됐다. 그때마다 나를 소개해야 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들에게 잘 보여주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상대방에게 내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와닿기를 원했으니까.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이었던 거다. 아직 내 자존감이 덜 회복된 증거일 수도 있고, 잘 보여준 사람만이 기억되는 워낙 복잡한 세상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엔 부쩍 이 문장이 많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페터 한트케
맞아, 내게 있는 단 하나의 취향은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이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난 사실 보여지는 것보다 보여지지 않은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며 몰래 거들먹 거린다. 내가 날 사랑하기 위한 허세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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