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시작할 때 ‘올해는 더 설레게’라는 소망을 품었었다. 지난 반 년을 되돌아보니 소망처럼 내게 설레였던 일이 꽤 있었다.
그 중 처음 경험했기 때문에 더 설레었던 일을 몇 가지 끄집어내어 본다.
일회용인 내 인생에 행복 점들이 더 촘촘해지길 바라며.
수영장에서 동동.
6월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15분쯤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구립 수영장이다. 첫 날 조금 늦게 도착해서 서둘러 샤워하고 수영복을 갈아입으면서 문득 초등학생 1학년 이후로 처음 수경과 수모를 써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영할 날을 기다리며 준비물을 챙기던 전날들보다 처음 수모를 쓰는 순간, 설레임이 현실이 된 기분에 얼떨떨했다.
하나 둘 셋 넷, 물 속에서 준비 체조하는 사람들 사이로 부끄러워하며 서둘러 몸을 물속으로 풍덩 담갔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 나 물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낯선 풍경과 어색함, 부끄러움이 다 잊혀져 베시시웃음이 나왔다. 내가 움직임에 따라 함께 찰랑거리는 물, 코를 뚫는 시원한 락스 냄새가 참 좋았다. 내가 수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겠지.
이제 배운 지 막 한 달이 넘어 간다. 퇴근 후 서둘러 짐을 챙기고 나와 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가는 길, 첫 날의 기분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조금 각색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다. 그 설레던 감정이 이젠 익숙함으로, 일상이 되며 내 삶의 행복의 점을 하나 더 만들었으니.
바다에서 책 읽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는 분지라 바다를 보는 건 언제나 좋았다. 그래서 ‘여행가자’라는 말은‘ 바다 보러 가자’와 같은 말이었다. 이번 휴가 여행지도 “바다가 있는 어딘가"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이번엔 강원도 강릉이었다. 처음가는 강원도. 강원도는 뚜벅이에겐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은 곳이라 늘 먼발치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강원도로 가는 교통이 많아 이번 달에만 두 번이나 다녀올 수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경포대로 달렸다. 강도 아닌 바닷가에서 자전거라니, 바다 소리가 주는 고요함을 매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니. 소나무 그늘이 만든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소나무 사이로 돗자리를 폈다. 되도록 바다의 지평선이 보이는 방향으로. 거기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닷가에 돗자리펴고 누워서 가만히있기. 그게 내가 했던 일의 전부다. 초여름의 햇빛이 이렇게 뜨거웠었나, 처음 온 몸으로 마주 본 태양이 참 낯설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내리쬐는 태양 속에서 대체 어떤 것에 휩싸여 총방아쇠를 당겼던걸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던걸까. 시간에 종속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난, 내리쬐는 태양을 받으며 책을 잡는 것이 옥죄는 시간에게서 벗어날 길처럼 느껴졌다. 그 길에서 시계는 내려놓은 채 책 장을 계속 넘겼다.
책을 읽다가 잠깐씩 고개를 들어 눈 앞에 보이는 파아란 지평선을 보면 바다가 내게 '넌 여행자야',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이글거리는 해변가 아지랑이와 이따금씩 바다 위를 지나는 시원한 모터소리. 그 시간을 통째로 다 가진 기분. 시간은 모두 잊고 그 장소에서 나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2주간 7편의 영화
요즘 책이 지겨워졌다. 아니 힘겨워졌다. 지금도 틈이 나면 책을 펼치긴 하지만 최근 그 시간 대신에 ‘멍’한 시간이 필요했는지, 아님 별 생각없이 듣고만 싶었던 것인지, 영화를 연달아 보았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환상의 빛>, <안경>, <카모메식당>, <봄날은 간다>, <본투비블루>, <경주>. 2주간 본 영화들이다. 이렇게 영화를 많이 몰아서 본 적은 처음이다.
슬로우 무비라고도 하고 독립영화라고도 한다지만 장르엔 관심 없다. 내가 영화를 보는 건 그걸 알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책이 힘겨워진 데에는 어쩌면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계속 무겁디 무거운 책만 읽어왔으니 덜어내고 싶었는 지도. 영화는 가만히 있어도 느끼기만 하면 되니까.
그 영화들은 내게 무언가 요구하지 않아서 좋았다. 감성에 젖어들라거나, 자신에게 공감해 달라며 공감을 갈구하지 않아서 가볍게 느껴졌다.
지금은 부담감을 덜고 그동안 쌓아 올리기 바빴던 내게 쉼이 되어 줄 시기인가보다. 사실은 쌓아가야하는 것이 아직도 참 많다. 나를 옥죄던 ‘얻어가야만 해’란 2년간의 의무감이란 무게를 조금은 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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