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사건>

readingcats 2024. 12. 1. 18:46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내 엄마를 지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세 달간 아니 에르노의 책 3권을 연달아 읽었다. <남자의 자리>, <다른 딸>, <사건>.
운이 좋게도 순서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의 자리 다음에는 다른 딸을 필히 읽어야한다. 궁금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버지를 다시 그리는 작업을 지나, 자기 존재의 그림자를 그리는 작업을 마치고, 쾌락을 알 즈음 자신이 겪은 자궁의 상처를 밝히는 작업까지.

<단순한 열정>으로 처음 접한 아니 에르노를 단숨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솔직하다’라고 생각했다. 회고록 같은 그의 글 3권을 읽고 나니 진실과 치부, 자긍심과 수치심,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진실의 나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나열하는 글쓰기를 한다. 글을 한 페이지라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순한 나열이 얼마나 어려운지. 밀려오는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 이 욕망을 해소하여 집어치워버리고 싶은 다급함과 싸워내야 한다. 그도 글에서 그 마음이 밀려옴을 밝힌다. 그 욕망과 싸우고 있지만 지겹게 나열하도록 용기 낸다. 감히, 그녀가 인생을 걸고 하는 이러한 글쓰기 작업을 이렇게 앉아서 읽어도 될지 조심스럽고 존경스럽다. 그가 펜을 드는 건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다른 시대의 남자, 죽은 언니, 죽인 아이, 돌아선 남자, 내 안의 엄마를 지운 여자. 망령을 불러내는 것이 굿이라면 실존하는 것들을 불러내어, 다시 죽이는 것은 전쟁과 다르지 않다. 그는 글로 죽인다.

내게도 다시 소환시키고 싶은 사건들이 있다. 아니, 죽이고 싶은 사건들이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나도 글을 쓰고 싶었던 거구나, 깨닫는다. 그녀가 죽인 자리에는 작은 구원의 재가 남는다. 그 재가 한 웅큼 모이고 나면, 그도 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이런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떤 건 가벼운 장난이지만 어떤 사건은 나도 피를 흘려야만 끝이 나는 전쟁일 것이다. 두려움이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앞서기에 아직은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