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 훈 : 이순신의 마음 읽기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아름다운 소설 첫 문장이라고 소개된 한 글을 보고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뭐랄까.. 그동안의 이성, 지성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글을 보았다면, <칼의 노래>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첫 문장만이 아름답지 않다. 모든 글이 아름답다. 작가들의 어휘를 따질 단계는 되지 않아서.. 오랜만의 한국 소설이었는데, 한국 사람의 마음을 잘 울리는 문장이 수두룩했다.
이순신의 고뇌를 김 훈만의 시각으로 만들어냈는데, 몰입도가 굉장했다. 아, 서사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갔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만의 이순신을 마음에 담았다.
주인공은 이순신. 그의 삶은 너무 상처받았다.
그 당시의 영웅은 외로웠고, 사명만이 전부였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란 단지 전쟁터에서 죽을 수 있다는 자유였다. 이순신에게 명예란 그 자유로운 죽음이 전부였다. 김 훈 작가는 이순신을 그렇게 풀어나갔다. 결코 미련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한 번은 ‘꼭 그래야만했냐’며 보듬어주고 싶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사실 불편했다. ‘진짜 멋있다’라는 영웅성만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엔 이렇게 간지났던 사람이 있어, 기억해!라며 위인전 한 권 보고 뚝딱 만든 것 같다면, <칼의 노래>는 이순신에게 숨결을 불어넣은 듯 하다. 오히려 그가 휘두르는 칼에 난 압도되지 않았다.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칼의 면모를 보았다.
이순신을 작가의 시선으로, 말로 그려내었다. 내가 알던 이순신은 교과서 속 영웅이었다면, 소설 속의 이순신은 역사 속에서 직접 살아서, 삶과 죽음을 느꼈던 똑같은 인간이다.
그 시대에서 임무와 죽음 같은, 이순신의 고민과 고뇌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칼의 노래>. 그리고 삶과 죽음을 하나로 생각했던 그의 신념 앞에서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p.26)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수는 없었다. (p.32)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일출 무렵의 아침 바다에서는 늘 숨을 곳이 없었다.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적의 뒤가 내 앞이었다. (p.104)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p.114)
나는 자주 식은 땀을 흘렸고, 때때로 가엾고 안쓰러워서 칼을 버리고 싶었다. (p.126)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2권 p.30)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p.31)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p.55)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p.113)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 그리고 그 빈 공간으로 밀려드는 빈 시간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