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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 책들. 구의 증명,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여름의 빌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두꺼운데 재밌게 읽었다. 소재도 글도 참 이미지적이고 극적이라 영화로 만들기에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영화화 확정 기사만 있고 그 뒤로 진전 소식은 전혀 없었다.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나보다. 그 시점에 영화화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 다시 만들게 되면 아마 현 시대와 어울리기에는 여러 각색이 필요할 듯싶다. 가 생각날만큼 무척 서정적이나 지극히 남성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의 한국 버전같았다. 다른 점은 여자 주인공이 '지독히 못생겼다'는 점이고, 같은 점은 그런 섬세한 '뮤즈'인 여성을 통해 남성이 그리움이 사무치다 성장한다는 지점이다. 뭐 어떤가, 예전엔 그런 남성들의 서사가 참 불쾌했는데, 요즘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참 지독히도 성장못했구나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 2024. 3. 25.
위로하는 밤 취했던 날이었다. 새콤한 화이트 와인과 Dst.club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소금의 현대예술 같은 음악과 목소리와 행복해를 연신 외치는 사랑스러운 친구. 책 얘기도 했다가, 아픔도 얘기했다가, 다시 웃었다가, 시시콜콜한 남자얘기도 했다가. 3주 만에 술을 마시는데, 참 들뜨기에 적당한 토요일 저녁이었다. 처음 만나 짧게 말을 나눈 사람들도, 기분도 모두 좋았고, 오랜만에 들뜨는 이 상황 자체에 취했다. 요즘은 내가 가진 우울함이 다른 사람에게 퍼질까봐 되도록 혼자서 고양이들과 시간만 보내고 있는 편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무사처럼 주눅 들고 무력해졌고, 바보를 만들어주는 약 기운 덕에 의지를 갖고 무언가 새롭게 할 의욕도 없기도 하고. 번뇌에 휩싸이기보다 바보가 되는 걸 하고 싶었으니 일종의 휴식기라고 생.. 2024. 3. 24.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에너지 2주만에 다시 정신의학과를 찾아서 약을 증량했다. 처음 약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나니, 다시 심장이 두근두근거려 집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얘기했더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비슷한 증상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끊이질 않고 그 날의 기억이 되풀이되고 그것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며, 집중하기가 힘든, 무기력하고 우울감이 동반되는. 몸이 아프지도 않고 지나치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주말에는 푹 쉬었고 일요일에는 집에만 은거하며 먹고 자며 누워지냈다. 마음이 많이 지쳐 어떤 것에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그냥 좋고 재밌는 것 보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제야 알겠다. 많은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해 한 치 걱정없이 일을 수행한다는 게 참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거구나. 연차를 쓰기.. 2024. 3. 20.
잊는 약 저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상담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생각이 끊이질 않고 불안한 감정을 멈출 수가 없어요. 처음 찾은 정신의학과의 진료실에서 내 증상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차분한 회색 니트를 입은 50대 중반의 남자 의사는 간간히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내 증상을 진료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이별 얘기를 할 때는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몇 가지 간단한 시험지를 작성하고, 어느정도 기질적으로도 강박 장애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약을 요청했다. 이별에서 온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고, 그날의 기억으로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멈추고 싶었다. 헤어지고 쓴 첫 글에서 선언했거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너의 자리를 메우리라고. 6개월을 꾸준.. 2024. 3. 11.
분열되고 섞이는 아침에 깨서 곧바로 글을 쓴다. 올겨울의 마지막 꽃샘추위가 찾아왔던 지난밤, 난 또 잠에 들지 못할까 무서웠었다. 새벽에 한 번 카레가 깨웠지만 다행히 거의 깨지 않고 푹 잤다. 그 전날에 거의 자지 못해 쌓인 잠이었다. 눈보다 먼저 의식이 퍼뜩 떠졌다. 생각이 몰려왔다. 깨서 생각이 몰려온 건지, 생각이 잠을 깨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께 저녁 정성스러웠던 네 거짓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장정 세 달 동안 눈물을 뚝뚝 쏟으며 되뇌었던 대단했던 다짐들이 연이어 생각났다. 가장 최근 눈물의 다짐은 3주 전이었었지. 하 씨, 오늘 새벽도 이렇게 잠을 못 자려나 싶어서 심호흡하며 명상을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멈추지 않는 기억에 집어삼켜질 즈음에 이럴 바에 그냥 일어나지, 싶어 눈을 떴고 핸드.. 2024. 3. 4.
에세이, 그림책 큐레이션이 좋았던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블루도어북스'에 다녀왔다. 마침 일요일 낮 시간에 1인 예약이 생겨서 빠르게 예매하고 찾아갔다. 들어갈 때부터 묘하게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잘 차려진 곳, 예약을 해야만 갈 수있는 곳, 유료 입장만 되는 곳에 누추한 내가 가도 될까. 가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아깝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것은 조용한 환대였다. 나긋나긋한 직원분이 차분하게 천천히, 이용방법을 알려주었고 충분히 숙지하도록 기다려주었다. 우산과 외투를 맡겨두고 따뜻한 커피를 부탁했다. 온도는 어두웠지만 책이 있는 곳에서 책을 알아보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책을 읽는 곳에는 조명들이 부족하지 않게 놓여져있었다. 정말 다양한 조명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발뮤다 랜턴 조명이 참 많았던 것도 인상.. 2024. 1. 28.